'돈이 있어야 돈을 버는' 문재인식 '소득 주도 성장' 논란
하위 20% 소득 최대폭 감소...상위 20% 소득은 되레 늘어
경제부처 '실기'로 간주..."장하성 정책실장 주도하라" 주문
[서울=뉴스핌] 정경환 기자 = 문재인 대통령이 저소득층의 소득이 크게 줄었다는 소식에 화들짝 놀란 모양입니다. '소득주도성장' 기치 아래 숱한 논란에도 최저임금을 대폭 올리면서까지 저소득층 소득 개선에 힘썼는데, 결과가 정반대로 나왔습니다.
30일 청와대에 따르면 문 대통령은 새 정부 출범 이후 지난 1년간의 소득주도성장 결과물이 실망스러움에도 불구, 다시 한 번 장하성 정책실장에게 힘을 실어 줄 전망입니다.
이는 전날 문 대통령 주재로 열린 가계소득동향점검회의 결과에서 청와대가 "앞으로 장하성 정책실장과 관련부처 장관들이 함께 경제 전반에 대해 자유롭게 토론하고 문제의식을 공유하는 회의를 계속 개최해나가기로 했다"고 밝힌 것에서 알 수 있습니다.
더 정확히는 청와대가 처음 배포한 브리핑 자료에는 '장하성 정책실장이 주도하여 관련부처 장관들과 함께'라고 쓰여 있었습니다. 그것을 청와대가 오해의 소지가 있을 수 있다면서 급하게 '주도하여'란 말을 빼고, 다시 배포한 것이죠.
엄경영 시대정신연구소 소장은 "한 마디로 (장 실장을) 재신임하겠다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29일 청와대에서 가계소득동향점검회의를 주재한 자리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사진=청와대> |
문 대통령이 급박하게 돌아가는 한반도 정세 속에서도 경제 상황을 한 번 돌아보게 된 것은 지난주 발표된 가계소득동향이 계기가 됐습니다.
통계청에 따르면 올해 1분기(1~3월) 저소득층(1분위 기준)의 소득은 전년동기 대비 8% 감소했습니다. 2003년 통계 작성을 시작한 이래 최대폭입니다. 반면 고소득층(5분위 기준)의 소득은 9.3% 늘어 역대 최대폭으로 증가했습니다.
국민의 소득을 5구간으로 나눈 소득5분위에서 양 극단의 격차가 더욱 크게 벌어진 것입니다. 1분위는 소득 수준 최하위 20%, 5분위는 소득 수순 최상위 20% 국민을 말합니다.
더욱이 1분위 가계소득은 2016년 들어 지난해 1분기까지 5분기 연속 감소하다 지난해 2분기 2.7% 증가, 3분기 0.0% 제자리, 4분기 10.2% 증가를 나타내면서 다소 개선되는 모습을 보이던 차였습니다. 정작 저소득층의 소득을 올려주기 위해 최저임금을 인상한 올해 1분기에 오히려 소득이 급감, 기대와는 정반대의 결과가 나왔습니다.
같은 기간 2분위 소득은 4.0% 줄었고, 3분위는 0.2%, 4분위는 3.9% 늘었습니다. 돈이 있는, 형편이 나은 계층으로 갈수록 소득 상황이 좋아지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어찌보면 그야말로 '소득이 주도한 성장'이라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김동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사진=기재부> |
특히 1분위 가계소득에서는 사상 처음으로 이전소득이 근로소득을 넘어섰습니다. 일해서 번 돈보다 국가 등으로부터 지원받은 돈이 더 많다는 얘깁니다. 근로소득은 지난해 1분기보다 13.3% 감소하며 472900원에 그친 데 비해 이전소득은 21.6% 증가한 59만7300원을 기록했습니다.
최저임금이 오르면서 저소득층의 일자리 환경이 악화, 정부 지원에 기대 소득의 빈 곳을 메우고 있다는 지적이 와닿는 부분입니다.
이에 문 대통령은 관계부처 장관들을 긴급 소집, 경제점검회의를 열게 된 것이죠. 문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최근 1분기 가계소득동향 조사 결과, 하위 20%(1분위)의 가계소득 감소 등 소득 분배의 악화는 우리에게 매우 '아픈' 지점이다. 우리의 경제정책이 제대로 가고 있는지 허심탄회하게 대화해보고 싶다"고 회의 개최 배경을 밝혔습니다.
'매우 아프다'고 했습니다. 다만 매우 아픈 것치고는 2시간 30분 동안의 진단 끝에 내린 처방이 특별해보이지는 않습니다. 청와대 정책실을 중심으로 앞으로 좀 더 잘해보자는 것인데요. 물론 당장 해결책이 나오긴 힘들 것입니다.
이를 두고 이제는 청와대가 한 발 물러서고, 각 부처에게 주도권을 줘야 하는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옵니다. 1년동안 청와대가 주도한 경제정책이 실패(?)했으니, 김동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을 비롯한 각 장관들에게 힘을 실어주고, 청와대 정책실은 이를 뒷받침해주는 게 낫지 않겠냐는 주장입니다.
김 부총리는 이를 시위하듯, 지난 24일 한 방송에서 "특정연도를 목표를 삼아서 최저임금을 올리는 것이 타당하지 않다"며 "충분히 검토해서 조금 신축적으로 보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을 꺼냈습니다.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 <사진=청와대> |
지난 1년간 '김동연 패싱(Passing, 무시)'이라는 굴욕적 언사에도 꿈쩍 않던 그가 문재인정부의 핵심 국정목표에 반기를 든 것입니다. 아무래도 문 대통령이 이번 회의에서 내놓은 '청와대 정책실 중심으로 더 잘해보자'는 결론은 이처럼 부처 간 불협화음이 생겨나기 시작할 조짐에, 예방주사를 놓은 것이 아닌가 합니다.
신율 명지대 교수는 "보통 경제정책의 성과에 대해서는 정부 출범 1년 6개월쯤 지나면서부터 부정적인 인식이 퍼지기 시작한다"며 "문 대통령은 아직 시간이 조금 더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고 꼬집었습니다.
hoan@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