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핌=황수정 기자] 누군가를 집요하게 쫓아다니고 그것이 고통을 수반한다면 더이상 사랑이 아니다. 아무리 "난 당신의 '넘버 원' 팬이에요"라고 외친들, 진심은 전해지지 않고 공허해질 뿐이다.
스타 소설가와 광팬의 이야기를 담은 연극 '미저리'(연출 황인뢰)가 지난달 개막해 순항 중이다. 스티븐 킹의 동명 소설과 이를 각색한 동명 영화(1990, 로브 라이너)로 잘 알려진 작품으로, 배우 브루스 윌리스의 2015년 브로드웨이 연극 데뷔 작품으로도 유명하다.
'미저리'는 인기 소설 '미저리'의 작가 '폴'을 동경하는 팬 '애니'의 광기 어린 집착을 담은 스릴러다. 폴은 교통사고를 당하고, 애니가 이를 구해 자신의 집에서 정성껏 돌본다. 그러나 소설 속 '미저리'의 죽음에 분노한 애니는 폴에게 다시 결말을 쓰게 하고 점점 위협적으로 변한다. 외부와의 연락을 차단하고 둘만의 세상을 꿈꾸는 애니에게 벗어나기 위해 폴은 고군분투한다.
목숨을 위협당하는 소설가 '폴'은 배우 김상중과 김승우, 이건명, 집착녀 '애니'는 배우 길해연, 이지하, 고수희, 마을보안관 '버스터' 역은 배우 고인배가 맡는다. 18년만에 복귀한 김상중과 첫 연극 데뷔인 김승우 때문에 주목도가 높았던 가운데, 두 사람을 포함해 모든 배우의 열연이 한시도 눈을 떼지 못하게 만든다.
연극은 소설과 영화의 기본 골격을 그대로 가져왔다. 그러나 폴과 애니 두 사람의 관계에 집중하면서, 스릴러는 조금 약해지고 오히려 멜로가 강해졌다. 애니가 폴을 연인처럼 대하는 것은 물론, 애니에게 귀여움과 사랑스러움도 공존하기 때문이다. 광기어린 집착이기보다 흡사 연인에게 배신당한 이의 아픔과 분노로 느껴진다. 원작 팬이라면 아쉬울 법도 하지만, 새로운 애니의 모습도 나쁘지 않다.
앞서 프레스콜 당시 김상중과 길해연 페어는 아주 오래된 부부, 김승우와 이지하 페어는 15년 된 부부, 이건명과 고수희 페어는 신혼부부라고 표현한 것처럼, 두 배우들의 케미를 보는 재미가 톡톡하다. 각 페어별 개성도 달라 여러 번 공연을 봐도 신선하게 즐길 수 있다.
물론 작품 본연의 섬뜩한 분위기는 공연 전반적으로 깔려있다. 애니가 폴에게 걸레 빤 물을 마시게 하거나 총을 겨누는 장면, 도망치려 했다는 이유로 망치로 두 다리를 부러뜨리는 등 폴을 향한 애니의 헌신이 조금씩 집착으로 변해가는 과정이 차근차근 보여진다. 여기서 붉고 푸른 조명과 천둥이나 빗소리 등의 효과음으로 애니의 무서움을 한층 강화한다.
무엇보다 공연의 하이라이트는 회전무대다. 무대는 애니의 집 내부를 배경으로, 특히 폴이 누워있는 방을 위주로 꾸며진다. 그러나 폴이 애니를 피해 도망치려 하거나, 폴의 행방을 찾는 버스터를 쫓는 애니의 장면 등에서 회전무대를 통해 집 자체가 움직이면서 무대의 한계를 극복했다. 회전만으로 쫓고 쫓기는 긴박함을 그대로 느끼게 한다.
다만 너무 잦은 암전은 아쉽다. 폴이 새로운 소설책 한 권을 쓸 정도로 오랜 시간 애니의 집에 갇혀있음을 표현하기 위해서인지는 몰라도 중간중간 극의 몰입을 깨는가 하면, 너무 긴 암전이 어리둥절하게 만들기도 한다. 그럼에도 지루하지 않은 이유는 단연 배우들의 힘이다.
연극 '미저리'는 오는 4월 15일까지 서울 종로구 두산아트센터 연강홀에서 공연한다.
[뉴스핌 Newspim] 황수정 기자(hsj1211@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