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보다 사랑, 사랑보다 예술(1)
단테와 베아트리체의 운명적 만남이 연출된 피렌체 '베키오 다리' 전경 <사진=이철환> |
흔히들 르네상스의 시발점은 이탈리아의 시인 단테와 그의 작품 '신곡(神曲, La Divina Commedia)'이라고들 한다. 그러나 엄밀히 말해 단테는 르네상스를 직접 이끈 인물은 아니다. 그는 관념 면에서는 오히려 중세적이며 기독교적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중세의 엄격함에서 벗어나 르네상스로 이끄는 데 많은 영향을 미친 인물이다. 인간의 부드럽고 따뜻한 감정이 넘치는 그의 '신곡'은 신 중심 생각에서 인간 중심으로 넘어오는 가교역할을 하였다. 또 그는 교회 공용어인 라틴어가 아닌 조국의 언어인 이탈리아어(토스카나어)로 예술적으로 뛰어난 시문(詩文)을 창조하려 한 최초의 인물이었다.
'신곡'으로 널리 알려져 있는 단테의 서사시 'La Divina Commedia'는 단테가 붙인 제목이 아니다. 서사시가 만들어진 지 250여년이 지난 1955년 로도비코 돌체(Lodovico Dolce)라는 출판업자가 붙인 것이다. 이 사람은 단테의 숭배자이던 보카치오가 쓴 '단테의 생애'에서 'Divina(성스러운)'라는 감탄적인 칭찬을 접한 뒤, 아이디어를 얻어 이런 제목을 탄생시키게 된 것이다.
원래 단테 자신은 서사시를 'La Commedia(희극)'이라고 제목을 붙였으며, 그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희극은 어떤 추한 것으로부터 시작되는 반면, 그 내용 면에서 즐겁게 끝을 맺는다.” 이 간략한 설명은 '신곡'의 구성에서 쉽게 이해될 수 있다.
한편, 이 신곡에 비견하여 보카치오의 '데카메론'을 '인곡(人曲, Umana Commedia)'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데카메론에 나오는 100편의 이야기는 인간의 생활에서 일상으로 일어나는 이야기들이다. 한마디로 세속의 일들을 다루고 있다. 문체도 외설스러운 담화체로 쓰여 있다. 이 작품은 희극적이고 재미있는 이야기에서부터 도덕적 교훈이 들어 있는 이야기, 타락한 교회와 부패한 성직자들 이야기까지 다양한 주제를 풍자하고 비판하는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다.
단테의 대서사시 '신곡'은 단테 자신으로 추정되는 한 인간이 저승세계인 지옥· 연옥· 천국을 여행하면서 많은 영혼들을 만나는 이야기로 이루어져 있다. 그에게는 안내자가 둘이 있다. 한 사람은 '지옥'과 '연옥'을 안내하는 베르길리우스인데, 단테가 평소 존경했던 로마 시대의 서사시인이다. 또 다른 한 사람은 '천국'을 소개하는 단테의 영원한 뮤즈 베아트리체이다.
신곡의 구조를 이루는 기본 구성 요소는 '곡(曲, canto)'이다. 전체 100개의 곡으로 이루어져 있는 신곡은 크게 '지옥편'·'연옥편'·'천국편'의 3부로 나누어져 있으며, 각 부마다 33개의 곡이 있다. 그러나 '지옥편'에는 시 전체의 서문(序文) 역할을 하는 곡이 하나 더 있다. 대부분의 곡은 136~151행 정도의 길이이며, 시의 운율체계는 3 운구법(韻句法:aba bcb cdc 등)이다. 이처럼 신곡에서 '3'이란 숫자는 삼위일체를 뜻하는 성스러운 숫자로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데, 작품 여러 곳에서 나타난다.
신곡에서의 단테의 여행은 1300년 '수난의 금요일'에 시작된다. 일주일 후인 부활절을 지난 목요일에 단테는 낙원에 도착하게 된다. 그 과정에서 수백 명의 역사적인 인물들을 만난다. 여러 명의 교황과 왕과 제후들, 그리고 예술가와 숱한 범죄자, 은행가, 온갖 추문의 주인공들과 자신의 친척, 어린 시절 친구들을 보게 된다. 그들 중 많은 사람과는 여행 도중 대화도 나누게 된다.
단테는 로마의 시인 베르길리우스의 안내 속에 고통스런 비명과 악취가 진동하는 지옥을 지나 참회와 회개 속에서 구원의 그날을 기다리는 연옥을 통과하게 된다. 이후 그는 천국에 도달하기에 앞서 영원한 사랑 베아트리체와 만난다. 단테는 그녀의 손에 이끌려 천국으로 날아오르고 마침내 하느님의 빛으로 해체되어 궁극적인 구원의 경지에 오른다.
알리기에리 단테(Alighieri Dante, 1265~1321)는 1265년 이탈리아의 피렌체에서 태어났다. 죽은 지 수백 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가장 위대한 시인이라고 칭송받고 있는 그는 '신곡'을 통해 르네상스 시대를 열었다. 그런데 이 신곡이 탄생하게 된 근저에는 베아트리체라는 뮤즈가 있다. 역사 속의 가장 유명한 연인 관계를 이야기할 때 많은 이들이 주저하지 않고 단테와 베아트리체를 첫 번째로 손꼽는다. 단테가 '신곡'을 구상하게 된 것도 '신곡'을 마무리할 수 있었던 것도 모두 한평생 그의 영혼을 지배하였던 운명적인 사랑 베아트리체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단테와 베아트리체는 단 두 번의 만남을 가졌을 뿐이다. 그것도 짧은 시간이었다. 그러나 그 짧은 두 번의 만남이 너무나 강렬했기에 단테는 평생 그녀를 가슴에 안고 살아간다. 그리고 위대한 작품 신곡을 만드는 모티브가 된다. 단테는 아홉 살 때 아버지의 손에 이끌려 포르티나리 가문의 축제에 참석한다. 그때 단테는 이 은행가 집안의 딸인 소녀 베아트리체(Beatrice)를 처음 보게 된다. 그녀의 실제 이름은 '비체(Bice)'였다.
소년 단테는 베아트리체를 보는 순간 마음을 빼앗기고 말았다. 새하얀 피부에 눈부신 에메랄드빛 눈을 한 소녀는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우아한 매너와 상냥한 응대로 소년 단테의 가슴을 고동치게 했다. 그녀는 마치 하늘에서 내려온 천사인 듯했다. 단테는 첫눈에 베아트리체에게 운명적인 사랑을 느꼈던 것이다. 넋을 뺏을 만큼 아름다운 소녀와의 첫 만남은 소년의 순결한 영혼을 송두리째 뒤흔들었다.
그날 이후 단테에겐 오직 베아트리체만이 생의 유일한 위안이요 행복이 되었다. 단테가 파티에서 베아트리체를 처음 보았을 때 그의 나이 아홉 살이었다. 가장 민감하고 순수한 어린 시절에 단테는 불같은 사랑에 빠진 것이다. 아침에는 소녀의 환영을 보며 눈을 떴다. 그러고는 자기 집에서 그리 멀지않은 베아트리체의 집 앞을 서성거렸다. 어떤 때는 주변의 도로에 주저앉아 온종일을 그녀가 나타나기를 기다린 적도 있었다. 그러나 소녀는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세월은 9년이 흘러갔다. 그러던 어느 날 마침내 두 번째 운명의 만남이 이루어지게 된다. 단테는 그날도 여느 때처럼 순례하듯 베아트리체의 집 앞을 지나 피렌체 시내를 가로지르는 아르노 강에 걸려 있는 베키오 다리 부근을 헤매고 있었다. 폰테 베키오(Ponte Vecchio)는 이탈리아어로 '오래된 다리'라는 뜻이다.
다리 난간에 기대 무심히 아르노 강을 바라보던 그의 시선 위로 여인의 모습이 어른거렸다. 베아트리체였다. 새하얀 드레스를 입은 그녀는 성숙한 여인의 체취를 풍기긴 했지만 9년 전의 고고한 자태 그대로였다. 뜻밖에 베아트리체는 단테가 자신을 짝사랑하고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기라도 한 것처럼 상냥한 미소로 인사를 건넸다. 그러나 심장도 입도 얼어버린 단테는 그 자리에서 꼼짝도 못한 채 짤막한 9년 만의 해후를 허망하게 지나보내야 했다.
단테는 베아트리체와의 두 번째 만남이 있은 지 2년 후인 1285년, 당시의 결혼관습에 따라 부모님이 정해준 처녀와 정혼을 하게 된다. 하지만 그가 베아트리체에 대한 사랑을 접은 것은 아니었다. 그는 단테의 가슴속에 이상적인 여인상으로 승화되어 내면의 등불로 자리한다.
베아트리체 역시 1287년 은행가인 시모네 데이 바르디와 결혼한다. 그러나 그로부터 3년 후 단테는 우연히 베아트리체의 사망 소식을 접하게 된다. 16년간 자신의 가슴에 자리해온 여신을 잃은 상실감은 형언할 수 없는 것이었다. 이 일을 계기로 단테는 베아트리체와의 두 번째 만남 이후 그에게 바친 연시를 모아 '라 비타 누오바(La Vita nuova, 새로운 인생)'를 출간한다. 단테는 아홉 살이었던 시절 베아트리체와의 만남을 상기하며 이렇게 쓰고 있다. “그 순간이 지난 뒤부터 줄곧—내가 고백하건대—사랑이 나의 영혼을 지배했다”라고.
이 엄청난 충격을 이겨내기 위해 단테는 중세 기독교의 대표적 신학자이자 철학자 토마스 아퀴나스의 스콜라철학을 숙독하게 된다. 그것이 결국 중세의 종교 및 사상의 총체라고 할 수 있는 철학의 대 서사시 '신곡'의 기본적 틀을 만들게 되는 계기가 됐다.
단테는 사랑하는 베아트리체와의 결혼이 이루어지지 못한 이유가 그녀의 아버지 포르티날리가 그녀를 돈 많은 금융업자와 결혼시켰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그를 증오한다. 작품 '신곡'에서 단테는 포르티날리를 지옥으로 떨어뜨리는 것으로 복수한다. 그뿐만이 아니라 모든 금융업자들을 지옥의 가장 밑바닥으로 추방했다.
한편, 단테는 1295년부터 본격적으로 정치활동에 나선다. 이후 그는 당시 다수의 소국가들로 분할되어 있던 조국 이탈리아의 통일을 위해 노력하였다. 그러다가 정치적 모함을 받아 피렌체에서 추방당하게 된다. 이때부터 단테는 실향민이 되어 이탈리아 각지를 유랑하는 신세가 된다. 그는 일종의 정치적 망명 상태에서도 끊임없이 피렌체로의 복귀를 시도했지만 번번이 좌절되고 만다. 망명지에서 그가 목도한 것은 실향의 아픔만이 아니었다. 교회와 정치의 부패, 그리고 그로 인해 고통받는 민중의 참혹한 현실이었다.
결국 단테는 정치적인 힘만으로는 그런 현실을 타개하는 게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그래서 기독교적 세계관을 바탕으로 한 문학작품을 통해 인류를 정신적 나락에서 구원하기로 결심한다. 그리해 대서사시 '신곡'을 구상하고 써내려 갔다.
비록 사후세계의 공간을 빌리기는 했지만 단테가 '신곡'에서 구현한 것은 착잡한 당대 이탈리아의 현실이었다. 20여년을 매달린 이 작품을 통해 단테는 뼈를 깎는 회개와 이웃에 대한 사랑만이 구원을 기약할 수 있음을 역설하고 있다. 그는 그 구원의 길잡이로서 자신의 영원한 사랑인 베아트리체를 설정하고 있다. 그렇게 해서 베아트리체는 단테만의 연인이 아닌 만인의 연인이자 구원자가 되어 우리 모두에게 구원의 손을 내밀고 있다.
이철환 객원 편집위원 mofelee@hanmail.net (전 재정경제부 금융정보분석원장, 한국거래소 시장감시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