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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뫼비우스 단상] 수저를 떨어뜨려봐

기사입력 : 2016년10월07일 16:29

최종수정 : 2016년10월07일 16:29

일상에 흔히 보이는 것들로 뫼비우스적, 그 이상의 상상 여행을 하려 한다. 주변의 사물들엔 저마다 독특한 내력이 숨어 있고 어떻게 빚느냐에 따라 보석이 되기도 하고 나침판이 되기도 한다. 그렇게 출발한 여행의 과정에 어떤 빛깔의 풍경이 나타날지, 그 끝이 어디까지 다다를지 필자 자신도 설레인다. 인문학의 시대라고 하는데 인문학에 대한 새로운 접근, 메타적 성찰 역시 필요한 시점이다. 사물과 풍경, 시대와 인문을 두루 관통하면서 색다르면서도 유익한 여행을 떠나려 한다.

금수저 은수저 흙수저란 말들이 퍼진지도 오래이다. 그렇게라도 비아냥거려야 비틀어지고 괴로운 마음들이 숨 쉴 구멍이나마 만들어지는 모양이다.

헬조선이란 말 역시 유행의 절정을 넘어 썰물처럼 아스라하게 밀려가는 면이 있지만 그 말에 드리워진 사회의 구조적 병폐가 깊어지기만 할뿐인 현실을 보면 언제 더 무서운 말로 둔갑해 우리 가슴을 또 휘저을지 모른다.

식당의 둥근 테이블 한쪽에 앉을 땐 그런 신조어들이 이미 들쑤셔놓은 터라 마음이 맑지 않았다. 흐린 구름이 드리웠다고나 할까 그런 기분으로 초등학교 동창 열 댓명이 모인 자리에 끼여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 요란한 즐거움 속에 한 시간이 지나도록 할 마디 말도 없는 친구 한 명이 내 맞은편에 앉아 있었다. 그는 생활이 나보단 낫지만 역시 형편이 없었다. 말하자면 그나 나나 흙수저에도 못미치는 수준이었다.
그는 작곡을 하며 사는데 유명한 작곡가도 아니기에 입에 풀칠이나 하는 정도였다. 성격도 원만하지 못하고 극도로 내성적이라 친구들 사이에도 왕따 비슷하다. 남들과 소통을 잘 하지 못하고 무슨 말을 꺼내면 안으로 숙여드는 말이라 얼른 이해가 되지 않는다. 친구들도 나이를 제법 먹어 그에게 대놓고 뭐라 하지 않고 포용하며 지내지만 대개 그를 고운 시선으로 보진 않는다.
두 시간 가까이 즐겁게 취해가며 떠들썩하던 분위기가 잠시 정적을 탄 사이에 그동안 한 마디 없던 그가 테이블에 놓인 수저통에 손을 내밀었다. 숟가락 하나를 꺼내더니 들어올렸다. 나 외엔 그에게 주목하는 사람이 없었다.
그는 손에 쥔 숟가락을 내 곁에 앉은 친구에게 건넸다. 건네 받은 친구는 영문을 몰라 당황하는 얼굴이었다. 숟가락을 꺼낼 때부터 색다르게 여겨졌던 나는 호기심이 더욱 일었다. 다른 친구들은 별 느낌이 없는 표정들이었고 다시 분위기가 떠들썩해지기 시작했다.
“떨어뜨려봐”
작곡을 하는 친구가 말했다. 나는 그 순간 아! 감탄이 절로 나왔다. 숟가락을 쥔 친구가 어리둥절 하는 사이 그는 다시 말했다.
“숟가락을 바닥에 떨어뜨려 봐. 그리고 그 소리를 들어봐.”
숟가락을 쥐고 있는 친구나 다른 친구들이나 그 의미를 파고들 감수성이 그다지 없어 보였지만 나는 느끼고 있었다. 그 친구가 무엇을 원하는지 마음 속에 어떤 강렬함이 수런거리고 있는지. 숟가락을 받아 쥔 친구가 어색하게 웃고만 있자 그는 숟가락을 도로 가져갔다. 그리곤 허공에서 바닥을 향해 살짝 놓았다.

팅, 소리가 청아하게 퍼져 나갔다.
그 순간의 황홀함과 행복감이 너무도 커서 나는 어쩔 줄 모를 지경이었다. 평소 내게도 그런 감수성이 있음을 아는 그는
“너는 이해하지?”
내 눈을 바라보며 물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눈빛은 시멘트 바닥을 두드리며 울리는 청아한 소리처럼 곱고 맑게 빛났다. 다른 친구들은 우리 둘의 이야기에 관심조차 없었고 이미 시작된 잡다한 이야기에 웃고 떠들어 나갔다.

작디 작은 사건이지만 그 울림이 아주 커서 그 또한 나는 결코 잊을 수 없을 것이다. 숟가락은 어릴 적에 놀이 도구가 별로 없던 내겐 좋은 놀이 도구 중의 하나였다. 숟가락의 오목 패인 쪽에 내 얼굴을 비치면 얼굴이 거꾸로 되면서 기이하게 일그러진다. 볼록 나온 면에 비치면 얼굴이 똑바른채 또다른 모양으로 변형된다. 오목 거울과 볼록 거울 같은 것이다. 그 두 개의 거울을 양면에 지니고 있는 것이기에 앞뒤로 돌려가며 내 얼굴을 비치며 신기해 했다. 그 즐거움을 나누고 싶어 주변에 있던 식구나 친구들에게도 비춰보게 했다.
자연으로부터 조금 문명화 된 쌀, 그것을 좀 더 문명화한 밥, 그것을 떠서 우리의 몸 안으로 넣어주는 숟가락은 인류학적으로도 깊은 의미가 있으며 우리의 손의 연장이라고 부를 수도 있겠다. 수저를 사용하지 않고 맨 손으로 음식을 먹는 부락이나 민족이 아프리카나 인도, 필리핀의 민다나오 등등 지금도 많으니 그 말의 타당성은 더 커질 수 있을 것 같다.
숟가락에 대한 그런 선이해가 있어서인지 몰라도 주변에서 금수저 은수저 흙수저 이야기가 흐를 때 나는 이런 말로 되받아치곤 했었다.
“나는 나무 수저가 좋아. 어릴 때 나무 도시락에 밥과 노란 단무지, 계란 같은 반찬을 넣고 소풍가서 산에 올라 먹을 때의 그 나무 젓가락. 와리바시 말야.”
그렇게 말하면 주변 사람들이 처음엔 어이없어 하다가 화제가 그런 방향으로 뒤바뀔 때도 있었다.
“나무 수저보다 손수저가 더 낫지. 어릴 때 엄마가 장독에서 김장 김치 꺼내와 손으로 주욱 찢어 내 입에 넣어 줄 때의 엄마 손 수저.”
그러면 사람들의 얼굴에 미소가 한결 도드라졌었다.
“맞아. 엄마의 손수저.”
엄마나 고향에 대한 그리움, 하얀 쌀밥의 서정 같은 걸로 깊어지기도 했었다. 더러는 돌아가신 엄마가 그리운지 목소리가 먹먹해지기도 했다.
그러나 그 정도가 나의 한계였다. 시중에 떠도는 금수저 은수저 흙수저 담론에 대해 나는 그 이상으로 깨고 나가지 못했고 그 정도로도 만족스러웠다. 그러나 작곡을 하는 가난뱅이 흙수저인 친구가 허공에 수저를 들어올린 다음에 떨어뜨리게 하고 그 친구가 알차차리지 못하자 자신이 떨어뜨릴 때 ‘팅~’ 소리는 나로선 상상치도 못한 수준이며 그 순간에 그 술집은 우주로 변해버렸고 은하수의 맑은 별들이 팅팅 소리를 내고 있었다.

금수저 은수저 흙수저란 말엔 너무도 깊은 비애가 담겨 있다. 그런 말이 나오기까진 사회의 구조가 병이 들어도 치명적으로 들 정도가 되어야 한다. 사회에 대한 색다른 은유가 터지는 것은 모순과 부패가 적당히 치닫을 때가 아니다. 견딜 수 없을 정도로 내달라 마음과 영혼의 골병이 헬조선의 접두사 격인 헬(hell) 즉 지옥인듯 들어야 기존의 벽의 한계를 깨뜨리며 터져 나온다. 1970년대의 시대적 질곡 속에 터져나온 ‘풍자냐 자살이냐’처럼 비장하지 않고 오히려 명랑하기까지 한 표현 속엔 진저리쳐지는 슬픔과 이 시대 청춘들의 감각이 함께 버무러져 더욱 아프다. 명랑성이 깃든 저런 말로 시대의 어둠이 사라지지 않을 거라는 절망감을 냉소적으로 안고 가는 상태의 밝은 은유이기에 가슴이 더욱 미어진다.
그러한 슬픔과 아이러니를 지닌 금수저 은수저 흙수저. 그 말을 특히 많이 쓰는 푸르른 나무들인 청년들에게 그런 말들을 지어낼 수밖에 없도록 만든 것에 대해 기성 세대의 한 사람으로서 미안하기 그지없다. 무수한 말들을 더 할 수도 있지만 각설하고 이 말은 꼭 하고 싶다.
젊은 남녀들이 모여 서로 돈이 없어 덧치 플레이로 술을 마시며 금수저 은수저 흙수저에 대해 가슴 아픈 열을 올릴 때 누구 한명쯤은 “난 우리 엄마의 손수저가 좋아. 그게 짱이야!”라고 해맑게 웃으며 말하면 좋겠다. 그 말을 받아 “수저를 떨어뜨려봐” 하며 퍼포먼스라도 벌였으면 좋겠다. 자신들을 해방시키는듯 가두는 절망의 박스에서 스스로 꺼낸 숟가락을 공중에 즉흥적으로 들어 올려 툭 떨어뜨려봤으면!
“그 소리에 대해 뭐가 느껴져?”
느닷없는 청아함에 혼을 빼앗긴 내게 가난한 작곡가인 내 친구가 넌지시 물었을 때 그와 단둘이라면 나는 전혀 색다른 세계로 빠져들면서 소리와 음악과 별들의 향연을 음미해 나갔을 것이다. 중년의 흙수저끼리 어우러져 천상의 소리와 빛깔들의 연금술사가 밤새도록 되어갔을 것이다. 그런 질문과 그런 대응의 미학적 절경을 젊은 남녀들이 누렸으면 좋겠다. 소리의 세계든, 감각, 마음, 취미, 꿈의 세계든 금수저 은수저 흙수저의 허한 장마에 파묻히기 이전의 맑은 대지에 닿았으면 좋겠다.
책임 도피나 책임 전가 같은 말은 결코 아니다. 젊은 세대들에게 금수저 은수저 흙수저의 비생산적 담론이나 지어내게 한 기성 세대들은 나를 포함해서 이제부터라도 그 못된 성곽을 빠져 나와 사회와 자아의 개선을 위해 반성과 노력을 하고, 젊은 세대들은 스스로 자아내는 청아한 소리에 원래 맑았던 영혼을 씻는다면, 우리는 우리가 지어낸 담론의 감옥에서 벗어나 멋지고 풍요로운 담론의 광장을 창출할 수 있을 것이다.

이명훈 (소설 ′작약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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