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기사 최신뉴스 GAM
KYD 라이브
KYD 디데이
라이프

속보

더보기

[이명훈의 4색 여행기] 서구 시원 문명에의 입구 크레타

기사입력 :

최종수정 :

※ 본문 글자 크기 조정

  • 더 작게
  • 작게
  • 보통
  • 크게
  • 더 크게

※ 번역할 언어 선택

크레타의 항구에 도착했을 때는 어스름한 저녁이었다. 배가 고팠다. 부둣가 저쪽에서 생선 냄새가 흘러오고 있었다. 생선 요리 식당이 보였다. 그리로 걸어가 허기진 배를 때웠다.
택시를 잡아 타고 시내로 달려가다보니 니코스 카잔차스키의 묘지 안내판이 보였다. 어둡지만 않다면 가보고 싶은데 마음을 접어야 했다.
평소에 좋아하는 작가의 무덤이 지키고 있어서인지 크레타는 내 마음을 한결 다사롭게 감싸주고 있었다. 청정한 공기에 어둠은 점점 더 깊어져가고 있었고 서구의 시원 문명권에 들어섰다는 기분이 가슴을 싸아하게 물들이고 있었다. 모텔을 골라 여장을 풀고는 푹 잔 다음 날엔 크노소스 궁으로 향했다.

(이진성의 <그리스 신화의 이해>에서 퍼옴)

크레타에서 가장 큰 도시인 이라클리온에서 십 여리 밖에 위치한 이 궁을 발굴한 에반스라는 영국의 고고학자가 콘크리이트로 부분적으로 보완한 것이 못마땅했지만 4000 여 년 남짓 전의 아득한 문명을 간직한 궁전은 침묵 속에 묵직한 기운을 뿜어내고 있었다. 하필 육지 아닌 섬에서 서구의 시원 문명이 싹텄을까.

그러나 이 말은 모순일지도 모른다. 크레타 문명지가 발굴된 후로 다양한 고고학적, 인문학적 연구에 따르면 이 섬에서 독자적으로 문명이 발아된 것만은 아니었다. 그 이전에 이미 문명의 빛을 발하고 있던 이집트나 오리엔트 지역의 문명들과 크레타는 접촉과 교류가 있었다. 이 섬과 육지를 오갈 정도의 선박 기술은 당시에도 풍부하게 있었던 것 같다. 이런 점을 감안한다면 크레타의 미노아 문명이 서구 문명의 시원적 성격이 있다는 말은 부분적으론 맞고 부분적으론 어폐가 생기게 된다. 이집트와 오리엔트까지 가 닿아야 하는 것이다. 서구 문명의 뿌리는 이처럼 근원이라고 여겨지던 곳에서 더 상류로 거슬러 올라가고 또 올라간다. 그 종착지가 어딘가를 알려면 이집트 문명과 오리엔트 문명 중에 초기에 특히 강렬했다고 하는 수메르까지 파고들어야 한다. 그 지점에서 또 깊어지는 면이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크레타의 미노아 문명을 서구의 시원 문명이라고 부르기 보단 시원 문명에의 입구라고 부르는 것이 타당할 수도 있겠다.

이에 대해 서구인들은 자존심이 상할지 모른다. 그들은 그리이스 문명에서 기원이 더 아득한 과거로 밀려갈수록 점점 불안해했다. 고고학의 발전적 성취는 서구인들의 그런 불안감과 일치하는 면도 있다. 물론 열린 마음의 서구인들에 해당되는 말은 아니고 닫힌 마음의 소유자들에게 국한된 말이다.
그러나 아전인수의 마음으로 역사건 문명이건 진단하던 시대는 지나갔다. 정확한 사실의 바탕 위에 진실의 건축물을 세우는 것이 이 시대에 걸맞는 인식일 것이다. 크레타를 서구의 시원 문명에의 입구라고 부르는 것은 그런 면에서 타당한 빛을 낼 것이다.

(이진성의 <그리스 신화의 이해>에서 퍼옴)

그런 생각을 하며 나는 크노소스 궁전의 지하 계단을 걸어 내려갔다. 미궁을 상기시키는 듯한 곳 앞에 서니 기분이 아득해진다. 괴물 미노타우로스가 떠올라서였다.
그리이스 신화에 따르면 황소로 변한 제우스가 에우로페라는 여자를 크레타 섬으로 납치한다. 둘 사이에 아들이 생겨나는데 그가 바로 미노아 문명의 전설적인 왕 미노스이다. 미노스는 장성해 왕위를 놓고 다투다가 바다의 신 포세이돈에게 도움을 청한다. 황소를 한 마리 보내달라고. 신께 제물로 되돌려 드리겠다고. 포세이돈이 받아들여 황소를 한 마리 보냈고 그 덕에 미노스는 왕이 되지만 약속을 지키지 않는다. 진노한 포세이돈이 복수한다. 미노스의 왕비에게 그 황소를 사랑하게 만드는 것이다. 둘 사이에 괴물이 태어나게 되는데 그게 바로 미노타우로스이다.
미노스 왕은 고민 끝에 한번 들어가면 나오기 어려운 미궁을 만들도록 해 미노타우로스는 그 안에 가둔다. 그 괴물을 죽인 영웅이 바로 아테네의 테세우스이다. 미노타우로스에게 아테네의 처녀 총각들이 공물로 바쳐지는데 그 사이에 자발적으로 섞인다. 크레타에 가서 그 괴물을 처치하고 오겠다고 나선 그는 미노스의 딸 아리아드네의 사랑을 받는다. 그녀가 실 한 꾸러미를 주면서 그것을 풀어가며 미궁 안으로 들어갔다가 다시 그 실을 따라 나오라고 일러준다. 테세우스는 미노타우로스를 죽이고 그 실을 따라 미궁을 빠져나온다.

<그리스 신화의 이해>의 저자 이진성에 의하면 이 신화의 밑바탕엔 크레타 문명이 미케네 문명에게 지배당하는 역사적 사건이 들어있다고 암시한다. 즉 미케네 문명이 기원전 1500년경부터 1400년 경까지 크레타 섬을 지배한 것으로 추정되는데 테세우스가 크레타의 괴물 미노타우로스를 퇴치하는 이야기 속에 그런 사실이 우회적으로 들어있다는 것이다.
미노스의 왕 역시 제우스의 아들이며 테세우스가 승리하게 된 이유를 미노스의 딸의 배신으로 만든 것도 어쩌면 전승자인 미케네 문명의 신화 창조자의 날조일지도 모른다. 미노스의 부인이 짐승과 불륜을 맺고 괴물을 낳았다는 얘기도 미노스 왕실에 대한 고의적 험담을 은밀히 숨겨둔 건지도 모른다. 그런 점은 미케네가 트로이에 대해 승리한 이야기가 배경인 호메로스의 <일리어드>와 <오딧세이>에서도 은근히 숨어 있다고도 볼 수 있다.

한 문명은 그렇게 무너지면서 신화적으로도 악의를 담당한채 뒷 문명의 재료가 된다. 지금 서구 문명의 바탕엔 그처럼 한때 화려하게 타올랐던 문명들의 아스라한 재들이 깔려 있다. 미케네 문명에 의해 지배당한 크레타 섬은 미케네와 그 이후의 그리스 문명에게 진귀한 불씨를 전해주고는 쇠퇴해 파란만장한 변화를 겪게 된다. 로마에 정복되어 속주가 되었다가 그 후 비잔틴 제국의 일부가 된다. 십자군 전쟁 땐 베네치아의 지배를 받는다. 오스만투르크 제국이 비잔틴 제국을 멸망시키자 더불어 정복 당해 섬을 채웠던 교회와 수도원들이 모스크가 되기도 한다. 그러한 격심한 굴곡들을 겪으며 그리이스 영토가 되어선 전설상으로 있던 크노소스 궁전의 발굴에 의해 고고학적으로 중요한 빛을 발하는 것이다.

‘미노스 문명은 연속된 유럽의 첫 고리’라는 말도 있다. 그러나 그 첫 고리는 과연 또 어디에서 비롯되었는가는 앞에서 잠깐 언급한 것처럼 앞으로의 고고학적 탐구를 통해 계속 더 이전으로 시간 여행을 할 것이다. 나는 가능하면 그 의미 있는 여행에 눈과 귀를 감지 않고 따라가려 한다. 지평선을 넘고 또 넘어야 진정한 시원이라고 밝혀질 아찔한 감각에 닿을 수 있을 것 같기 때문이다. 오랜 여행을 거쳐오면서 서구의 시원격인 문명 앞에 서서 나는 이제야 시작하는 느낌을 받는다. 에메럴드 빛 에게 해에 둘러싸인, 낮은 구릉 위의 크노소스 궁의 빛 바랜 잔해들이 비밀의 문을 더 열어 보라는듯 빛나고 있었다.

이명훈 (소설 ′작약도′ 저자)

 

[관련키워드]

[뉴스핌 베스트 기사]

사진
김정은, 2018년 서울답방 하루전 취소 [서울=뉴스핌] 이영종 통일전문기자 = 문재인 정부 당시인 2018년 12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서울 방문 일정을 확정하고도 "정치국 위원들이 반대한다"는 이유를 들어 남북 공동발표 하루 전 취소했다는 주장이 19일 제기됐다. [서울=뉴스핌] 이영종 통일전문기자 = 남북 정상회담 개최를 위한 대북 특사로 2018년 3월 5일 평양을 방문한 정의용 당시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에게 문재인 당시 대통령의 친서를 전달하고 있다. 왼쪽부터 윤건영 청와대 국정상황실장, 서훈 국가정보원장, 천해성 통일부 차관, 정의용 특사, 김정은,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당시 직책). [사진=청와대 제공] 2026.01.19 yjlee@newspim.com 당시 남북 정상회담 개최를 위한 대북특사 역할을 맡았던 윤건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저서 '판문점 프로젝트'(김영사)에서 "김정은 위원장이 9월 문재인 당시 대통령의 평양 방문과 정상회담이 열린 이후 12월 13~14일 서울을 방문키로 약속했다"면서 "삼성전자와 남산타워‧고척돔 방문 등 일정이 잡혀 있었다"고 밝혔다. 비밀리에 답방을 추진하기 위해 '북한산'이란 코드네임도 붙였고, 경호문제 등을 고려해 숙소는 남산에 자리한 반얀트리호텔로 정했다. 윤 의원은 책에서 "남북한은 11월 26일 김정은의 서울 답방을 공동 발표키로 했지만, 하루 전 북측이 "정치국 위원들이 신변안전을 우려해 '도로를 막겠다', '위원직을 사퇴하겠다'며 결사 반대한다"는 입장을 전해와 무산됐다고 주장했다. 북한은 당시 "김 위원장도 정치국 위원들의 뜻을 무시하고 서울을 방문할 수 없다"고 전해왔고, 우리 측이 문 당시 대통령의 신변안전 보장 서한을 전달했지만 결국 성사되지 못했다는 게 윤 의원은 설명이다. 하지만 김정은의 결정을 노동당 정치국 위원들이 반대했다는 건 북한 체제의 특성상 논리가 맞지 않는 것으로, 서울 답방을 하지 않으려는 핑계에 불과한 것으로 보인다. [서울=뉴스핌] 이영종 통일전문기자 = 지난해 12월 9~11일 열린 노동당 제8기 13차 전원회의에서 김정은 노동당 총비서 겸 국무위원장이 간부들과 이야기 하고 있다. [사진=노동신문] 2026.01.19 yjlee@newspim.com 김정은의 아버지인 김정일 국방위원장도 2000년 6월 평양 정상회담 공동선언에서 '서울 답방'을 약속했지만, 10년 넘게 지키지 않았고 결국 2011년 사망했다. 윤 의원도 책에서 "북측은 김 위원장의 경호와 안전 문제로 노동당 정치국이 유례없이 반발한다는 다소 황당한 근거를 내세웠지만 실제로는 미국의 (북미대화) 압력에 순응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당시 청와대 국정실장을 맡고 있던 윤 의원은 정의용 안보실장 등과 함께 2018년 3월과 9월 평양을 방문해 특사 자격으로 김정은과 만났다. 윤 의원은 책에서 그해 3월 5일 평양 노동당 본부청사에서 만났을 때 김정은이 "김일성 주석의 유훈인 조선반도(한반도) 비핵화 원칙이 달라진 건 없다"며 "군사적 위협이 제거되고 정전 체제에서 안전이 조성된다면 우리가 핵을 보유할 이유가 없다"고 말한 것으로 전했다. [서울=뉴스핌] 이영종 통일전문기자 =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리설주 부부가 2018년 4월 1일 남측 예술단의 평양공연을 관람한 뒤 가수들과 기념촬영을 했다. 김정은 오른쪽이 가수 백지영 씨. [사진=뉴스핌 자료] 2026.01.19 yjlee@newspim.com 또 면담을 마치면서 "비인간적 사람으로 남고 싶지 않다"며 자신을 믿어달라는 입장도 밝힌 것으로 윤 의원은 덧붙였다. 하지만 김정은은 이듬해 2월 자신의 핵 집착과 회담 전략 실패 등으로 북미 하노이 정상회담이 파국을 맞자 문재인 대통령을 항해 "삶은 소대가리" 운운하는 격렬한 비방을 퍼부었고 남북관계는 현재까지 파국을 면치 못하고 있다. 김정은은 2년 전부터 남북관계를 적대관계로 규정하고 '한국=제1주적'이라며 차단막을 쳐왔다. 윤 의원은 김정은이 2018년 4월 1일 남측 예술단의 평양 공연 때 가수 백지영 씨가 부른 노래 '총 맞은 것처럼'을 듣고 "북측 젊은이들이 따라 부르면 심각한 상황이 오겠다"는 언급을 한 것으로 전했다. 김정은은 2020년 12월 반동사상문화배격법을 만들어 한국 드라마와 영화를 단순 시청하는 경우에도 징역 5~15년을 선고하는 등 한류문화를 철저하게 단속하고 있다.   [서울=뉴스핌] 이영종 통일전문기자 = 2018년 남북 정상회담 대북특사 비화를 담은 윤건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책 '판문점 프로젝트' [사진=김영사] 2026.01.19 yjlee@newspim.com yjlee@newspim.com 2026-01-19 07:46
사진
李대통령 국정지지율 53% [리얼미터] [서울=뉴스핌] 박찬제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의 국정수행 지지율이 3주만에 하락세로 53.1%를 기록했다는 여론조사가 19일 나왔다. 여론조사 리얼미터가 에너지경제신문 의뢰로 지난 5일부터 9일까지 전국 18살 이상 유권자 2516명을 대상으로 이 대통령 국정수행 평가 조사를 실시한 결과다.  이 대통령이 '잘한다'는 긍정 평가는 지난주보다 3.7%포인트(p) 낮은 53.1%였다. 이재명 대통령과 여야 6개 정당 지도부가 16일 오후 청와대 상춘재에서 오찬 간담회를 하고 있다. [사진=청와대] '잘못한다' 부정평가는 4.4%p 오른 42.2%였다. 긍·부정 격차는 10.9%p다. '잘 모름' 응답은 4.8%였다. 리얼미터 측은 "코스피 4800선 돌파와 한일 정상회담 등 경제·외교 성과가 있었는데도 정부의 검찰개혁안을 둘러싼 당정 이견 노출과 여권 인사들의 공천헌금 의혹 등 도덕성 논란이 겹치며 지지율이 하락세를 보였다"고 분석했다. 지난달 15∼16일 전국 18살 이상 1004명을 대상으로 한 정당 지지도 조사에서는 더불어민주당 42.5%, 국민의힘 37.0%의 지지율을 보였다. 민주당 지지율은 5.3%p가 떨어지며 4주 만에 하락세로 빠졌다. 국민의힘은 반면 3.5%p 상승하며 4주 만에 반등했다. 개혁신당 3.3%, 조국혁신당 2.5%, 진보당 1.7%였다. 무당층은 11.5%였다. 리얼미터는 민주당의 경우 강선우·김병기 의원 공천헌금 의혹 수사 본격화로 도덕성 논란이 지지율 하락 원인이라고 분석했다. 중대범죄수사청(중수청)과 공소청법을 둘러싼 당정 갈등도 지지율 하락 원인으로 봤다.  반면 국민의힘은 특검의 윤석열 전 대통령 사형 구형과 한동훈 제명 논란으로 대구·경북(TK)과 보수층 등 전통 지지층이 결집한 것이 지지율 반등 원인이라고 리얼미터 측은 분석했다. 대통령 국정수행 지지도 조사는 신뢰수준 95%에 표준오차는 ±2.0%p, 정당 지지도는 95% 신뢰수준에 표본오차 ±3.1%p다. 대통령 국정수행 지지도 조사 응답률은 4.5%, 정당 지지도 조사 응답률은 3.8%였다. 보다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하면 된다. pcjay@newspim.com 2026-01-19 09:25
기사 번역
결과물 출력을 준비하고 있어요.
종목 추적기

S&P 500 기업 중 기사 내용이 영향을 줄 종목 추적

결과물 출력을 준비하고 있어요.

긍정 영향 종목

  • Lockheed Martin Corp. Industrials
    우크라이나 안보 지원 강화 기대감으로 방산 수요 증가 직접적. 미·러 긴장 완화 불확실성 속에서도 방위산업 매출 안정성 강화 예상됨.

부정 영향 종목

  • Caterpillar Inc. Industrials
    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 시 건설 및 중장비 수요 불확실성 직접적. 글로벌 인프라 투자 지연으로 매출 성장 둔화 가능성 있음.
이 내용에 포함된 데이터와 의견은 뉴스핌 AI가 분석한 결과입니다. 정보 제공 목적으로만 작성되었으며, 특정 종목 매매를 권유하지 않습니다. 투자 판단 및 결과에 대한 책임은 투자자 본인에게 있습니다. 주식 투자는 원금 손실 가능성이 있으므로, 투자 전 충분한 조사와 전문가 상담을 권장합니다.
안다쇼핑
Top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