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학 강의동 건립 명목, "그룹차원 지원일 뿐" 해명
[뉴스핌=전선형 기자] 지난해 ‘주전산기 시스템 교체’를 두고 알력다툼을 벌였던 KB금융지주와 KB은행 사태를 기억하시는지요. 국민은행 주전산기를 IBM 메인프레임에서 유닉스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기종선택과 관련한 컨설팅보고서 등에 왜곡이 있었다는 행장과 감사의 보고를 은행과 지주 사외이사들이 제대로 받지 않으면서 결국 은행장과 지주 회장이 사임까지 하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했던 일입니다.
특히 사외이사들이 속한 단체가 지주와 은행으로부터 거액의 기부금까지 받았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경영진과 사외이사간 유착관계가 있었던 것 아니냐’는 논란까지 일으켰었죠.
그런데 바로 그 시기쯤, 보험업계에서도 사외이사가 소속된 단체에 통 큰 기부를 한 곳이 있었습니다. 바로 빅3 생명보험사 중 하나인 한화생명입니다.
지난 3월 공개된 지배구조 연차보고서에 따르면 한화생명은 서울대학교에 최근 3년 동안 27억2061만원을 기부했습니다. 명목은 서울대학교 법학대학교 첨단강의동 건립(25억9000만원)과 법학전문대학원 장학생 후원금(1억3000만원) 등 입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현재 한화생명에는 서울대학교 경영대학 학장인 김병도 교수가 사외이사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김 교수는 2012년 6월 29일 한화생명 사외이사로 선임됐으며 한 차례 연임을 통해 오는 6월 28일까지가 임기입니다.
물론, 금융사가 사외이사가 소속된 기관이나 단체에 기부를 한 사실은 법적으로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다만 앞서 언급한 KB금융 사례 등과 같이, 고액의 기부는 사외이사의 독립성을 떨어트리고 경영진에 대한 감시와 견제 기능을 약화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금융권에서는 꾸준히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는 부분입니다.
이에 대해 한화생명 관계자는 “그룹차원의 기부 활동이고 수 년에 걸쳐 분할해 기부하기로 했으며 김병도 사외이사와는 별개의 기부"라고 해명했습니다.
그의 말처럼 한화생명의 이번 기부는 그룹차원의 대규모 지원 사업의 일부로, 서울대 법대 강의동 건립에는 한화생명을 포함해 한화그룹, 한화손해보험, 한화투자증권이 총 50억원을, 장학생 후원에는 한화갤러리아, 한화호텔앤리조트, 한화걸설, 한화케미칼 등 총 10곳의 계열사가 4억5000만원을 기부했습니다.
하지만 "한화생명이 좀 더 신중했어야 한다"는 것이 금융권의 일반적인 시각입니다. 특히 사외이사 의견이 의사결정에 상당한 영향을 끼치는 금융기관에서는 고액의 기부가 자칫 사외이사의 독립성을 훼손할 수도 있다는 설명입니다.
게다가 한화생명의 해명처럼 단지 그룹 계열사라는 이유만으로 서울대에 27억원이나 기부했다면 이 부분도 다시 한 번 생각해 봐야 할 부분입니다.
보험사는 일반 기업과 다르게 보험계약자가 낸 돈으로 운영됩니다. 보험사에 이익이 나면 일부를 계약자들에게 배당금 등으로 되돌려 주는 것이 원칙입니다. 기부금의 재원도 마찬가지입니다. 단순히 그룹에서 하기로 해서 수 십억원의 기부를 했다는 것이 적절한 해명인지도 의문입니다.
[뉴스핌 Newspim] 전선형 기자 (intherain@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