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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소천 총재 재임10년, 중국경제에 무슨일이...

기사입력 : 2013년03월14일 11:53

최종수정 : 2013년05월09일 11:12

[뉴스핌=조윤선 기자] 지난 11일 65세의 저우샤오촨(周小川 주소천) 인민은행 총재가 중국인민정치협상회의 제12기 전국위원회 부주석으로 선출됐다.  저우 총재는 지난 10년간 중국 중앙은행인 인민은행의 수장으로서 중국 경제의 눈부신 성장과 함께 해온 세계가 주목하는 중국의 경제 지도자다.  

저우 총재 재임 10년은 중국의 국운이 무섭게 굴기하면서 중국경제가 세계의 중심무대로 진입하는 시기였다. 그의 재임중 중국은 G2로 도약했고, 중국의 외환보유액은 10배로 불어났다.  고성장 경제하에서 그는 인플레와 서방의 환율 압력에 잘 대처해왔고 글로벌화의 과제였던 금융 통화 환율 개혁을 무난히 추진해왔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저우 총재의 재임 10년을 통해 중국경제에 과거 10년간  무슨 변화가 있었고 어떤일이 벌어졌는지 짚어본다. 

저우샤오촨(周小川).



                                                                  물가와 환율 방어에 성공한 중앙은행장

△2003년
2002년 12월 말 저우샤오촨이 중국 인민은행 총재에 오르자 미국, 일본 등 외신들은 그가 세계 각국으로부터 위안화 평가절상 압력을 받게될 것이라며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가 중요한 과제가 될 것이라고 보도했다. 이에 2003년 3월 5일 저우샤오촨은 위안화의 환율제도와 환율은 대체로 적정한 수준이라며 중국이 이를 변화시킬 필요는 없다고 응수했다.

2003년 중앙은행은 경제 조정과 컨트롤의 대상으로 부동산에 눈을 돌렸다. 당시 이 조치가 향후 10년동안의 엄격한 부동산 통제정책으로 이어질지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다. 이후 2008년 금융위기가 발생하기까지 디스인플레이션이 통화정책의 주 기조가 됐다.

△2004년
그 해 1월 국가 외환보유고를 활용해 국유상업은행에 대규모 자금을 투자하는 방책을 내놓으면서 업계 관계자들을 놀라게 했다.  저우 행장은 당시  재정부가 1300억 위안 상당의 채권을 발행해 국유상업은행에 직접 자금을 투입할 것이란 시중의 예상을 깨버렸던 것이다.

당시 한 업계 관계자는 "저우샤오촨이 국유상업은행 개혁에 재정부가 아닌 외환보유고를 활용한 것은 그의 정책 운용의 유연성을 보여주는 것이며 그가 현실적이고 실질적인 사람임을 방증한다"고 말했다.

                                                                관리 변동화율제 도입

△2005년
2005년 7월 21일 저우샤오촨은 달러에 고정했던 위안화 환율제도를 폐지하고  관리 변동환율제를 시행하겠다는 역사적인 선언을 해 전 세계를 놀라게 했다.

당시 장 클로드 트리셰 유럽중앙은행 총재는 "중국의 고정환율제 폐지가 세계 금융 안전과 세계 경제 운용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평가했다.

△2006년
2006년 초 '위안화 마켓메이커(시장조정자)제도'가 정식으로 도입됐다. 이는 중국의 환율개혁에 있어서 2005년 7월 21일 변동환율제와 환율바스켓 시행 만큼이나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그 동안은 중국 위안화와 외국 통화 간 외환거래에서 중앙은행인 인민은행만이 유일한 시장조정자 역할을 해왔지만, 마켓메이커 제도 도입으로 은행들이 거래 상대방 은행과 장외에서 환율을 협의해 대량 거래할 수 있게 되면서 외환 시장에 유동성을 제고하는 한편 위안화 환율의 급격한 변동을 완화하는 역할을 발휘하게 됐다.

△2007년
저우사오촨은 2007년 9월 20일 일본 도쿄에서 후쿠이 도시히코 일본은행 총재와 중일 통화스와프 협정을 체결했다. 이 협정은 지난 2002년 3월 28일 '치앙마이 이니셔티브'에서 합의된 내용을 바탕으로 중일 양국의 중앙은행장이 체결한 것으로써 동아시아 지역의 금융협력 강화와 지역 금융시장 안정 유지 및 동아시아 경제 발전에 큰 역할을 발휘했다.

그해 말 저우샤오촨은 "2007년은 헤지 조작의 강도가 가장 컸던 한 해로 올해에만 대출금리를 5차례, 지급준비율은 10차례 인상했으며, 공개시장조작을 강화하는 한편 중앙은행 어음 발행량도 대폭 늘렸다"고 말했다.

                                                     한중 통화스와프협정 체결

△2008년
2008년  3월 저우샤오촨은 중국 인민은행 총재에 재선임됐다. 9월 14일 레이먼 브라더스 파산 후 이튿날 중앙은행은 금리를 낮췄다. 이 해 중국 인민은행은 한국과 통화스와프 협정을 맺었다.

12월 그는 공개 석상에서 내수 확대와 산업구조 최적화, 기후 환경에 대한 관심 제고, 탄소 배출 절감 등을 주제로 한 강연에서 금융시장이 탄소배출권 쿼터 제도에서 발휘하게 될 역할에 대해 역설해 관심을 모았다.

△2009년
저우샤오촨은 3월 '국제통화시스템 개혁에 관한 생각'이라는 문장을 발표해 달러 주도의 통화 시스템에서 탈피해 장기적으로 통화 가치를 안정적으로 보존할 수 있는 국제통화시스템을 마련할 것을 제안했다. 특히 국제통화기금(IMF) 특별인출권의 국제통화시스템에서의 역할 강화를 강조했다.

△2010년
그 해 6월 중국 당국은 한 단계 더 심화된 위안화 환율제도 개혁을 시행, 통화바스켓에 대한 조정을 실시해 환율의 유연성을 제고했다. 이후 2012년 4월 위안화 환율의 변동폭은 0.5%에서 1%까지 확대됐다.

2010년 9월 저우샤오촨은 전 오바마 대통령의 경제고문이며 전 하버드 대학교의 총장이었던 로렌스 서머스 박사와 테니스 시합을 가졌다. 당시 두 사람은 테니스 시합에서 이긴 쪽이 중미간의 환율 문제에 대해 결정권을 갖도록 내기를 하자는 농담을 했었는데, 이 시합에서 결국 저우샤오촨이 서머스 박사를 제치고 승리를 거두었다는 재미있는 일화도 전해진다.

                                                   환율변동폭 1%로 확대
                                        
△2011년
2010년 11월 저우샤오촨은 베이징 대학에서 '웅덩이 속에 핫머니를 가둬둬야 한다(池子關熱錢)'는 주제로 한 강연에서 "단기투기자금(핫머니)이 중국 시장으로 몰리고 있는데 이 것을 중국 경제 속으로 흘러들어가게 하기 보단 웅덩이 안에 모아두고 싶다. 이렇게 하면 필요한 때에 이 자금을 웅덩이에서 꺼내 유동 자본 부족이 중국 경제에 입힐 타격을 경감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후 2011년이 되어서 저우샤오촨이 당시 말했던 웅덩이(池子)가 '예금준비율'을 뜻한 것이었음이 밝혀졌다.

△2012년
4월 중앙은행은 양회의 최대 관심사 중 하나였던 위안화 환율변동폭을 1%까지 확대했다. 

11월 11일 저우샤오촨은 중국공산당 18차 당대회 기자회견에서 퇴임 시기를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나이가 됐으니 물러날때도 됐지요"라고 말해 그의 퇴임설이 일파만파로 확산됐다. 

△2013년
3월 11일 오후 65세의 저우샤오촨이 중국인민정치협상회의 12기 전국위원회(전국정협) 부주석으로 선출됐다. 이로써 그는 임기제한을 넘기며 인민은행 총재직을 유임할 것이 더욱 확실시됐다. 저우샤오촨은 10년간 인민은행을 맡아온 중국 최장수 중앙은행 수장이지만, 세계 최장수 중앙은행 수장의 타이틀은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을 18년간 맡았던 그린스펀(퇴임시 나이 80세)이 가지고 있다.

 

 






[뉴스핌 Newspim] 조윤선 기자 (yoonsun@newspi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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