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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집은 못 사도, 라부부는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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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스핌] 최원진 기자= 벽 한 면을 라부부 인형으로 가득 채운 '라부부 월', 선반 다섯 칸을 통째로 차지한 젤리캣 인형들, 그리고 이를 자랑스럽게 소개하는 20~30대의 얼굴들. 모두 틱톡에서 유행하는 콘텐츠다. 장난감은 아이들의 전유물이라는 통념은 이미 무너진 지 오래다.

최원진 국제부 기자

2025년은 성인이 장난감을 가장 많이 산 해라고 봐도 무방하다. 글로벌 소비조사업체 서카나에 따르면 올해 영국 성인 소비자의 43%가 자신이나 다른 성인을 위해 장난감을 구매했고, Z세대에서는 그 비율이 76%에 달했다. 중국 팝마트의 라부부 인형과 영국 브랜드 젤리캣이 이 흐름의 중심에 있다.

겉으로 보면 단순한 유행이다. 하지만 조금만 더 들여다보면, 이 인형들은 MZ세대의 취향을 넘어 지금 이 시대 청년들의 감정 상태를 압축한 상징에 가깝다.

첫 번째 이유는 '작은 사치'에 대한 수요다. 집값 상승, 고금리, 고물가 속에서 내 집 마련이나 결혼·출산은 점점 더 먼 이야기가 됐다. 대신 소비는 지금 당장 손에 잡히는 만족으로 향한다. 이를 '둠 스펜딩(doom spending)'이라고 부른다. 언젠가 도달할 수 있을지 알 수 없는 큰 목표 대신, 현재의 불안을 달래는 소비가 늘어난다는 뜻이다.

뉴스에서는 연일 전쟁과 복잡한 정치 갈등, 고물가와 암울한 경제 전망이 쏟아진다. 모든 것이 무겁고 우울한 상황에서, 귀여운 외형에 손에 착 감기는 인형은 삶에 즉각적인 기쁨을 준다. 라부부 인형은 적게는 수만 원에서 수십만 원대 가격으로 '감당 가능한 사치'에 해당한다. 집은 못 사도, 인형은 살 수 있다. 미래를 소유할 수 없을 때, 현재의 위안을 소유하는 방식이다.

두 번째 이유는 소속감에 대한 갈증이다. 코로나 팬데믹 이후 Z세대는 사회적으로 가장 고립된 세대가 됐다. 힌지 서베이가 올해 3월 영국 Z세대 2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무려 85%가 외로움을 경험했다고 답했다. 특히 저소득 청년의 절반 이상은 '극심한 외로움'을 경험한 적이 있다고 밝혔다.

이런 이들에게 틱톡은 단순한 놀이 공간이 아니라 관계가 형성되고 정체성이 확인되는 장이다. 라부부와 젤리캣은 그 안에서 일종의 공통 언어가 됐다. '라부부 월'을 만들고, 정품을 구하는 팁을 공유하며, 신제품을 서로 경쟁하듯 소개한다. 소비를 통해 공동체의 일원이 된다는 감각을 얻는다. 

젤리캣의 아르노 메이셀 최고경영자(CEO)는 2022년에 틱톡과 인스타그램 공식 계정을 설립했고, 이들을 위한 커뮤니티장을 제공했다. 그는 "온라인 커뮤니티와 오프라인 팝업 경험을 통해 세대 간 연결이 만들어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11월 5일부터 지난 28일 서울 성동구 성수동에서 열린 젤리캣 스페이스 팝업 행사 방문객의 80%가 20~30대였다.

흥미로운 점은 이 열풍이 특정 계층에 국한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틱톡에는 대기업 사무직 근로자부터 군인까지, 다양한 직업군의 성인들이 등장해 라부부와 젤리캣 등 봉제 인형이 정신 건강에 도움이 된다고 말한다. 점점 더 스트레스가 가중되는 성인기의 삶 속에서, 인형이 불안과 긴장을 완화하는 정서적 안전장치 역할을 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세 번째 이유는 현실로부터의 정서적 후퇴, 혹은 회복이다. 대부분은 어릴 적 애착 인형 하나쯤을 갖고 있었을 것이다. 이를 '향수'나 '피터팬 효과'로 설명할 수 있다.

서카나의 완구 디렉터 멜리사 시몬즈는 "아이일 때는 빨리 어른이 되고 싶지만, 어른이 되고 나면 아이였던 시절이 가장 좋았다는 걸 깨닫는다"며 "이는 성장에 대한 거부라기보다, 행복을 주는 요소를 붙잡으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Z세대는 성인이 된 이후에도 팬데믹과 고물가를 연달아 겪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영상은 소셜미디어 피드에 일상처럼 등장한다. 이런 환경에서 말없이 나를 바라봐주는 인형은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는다. 책임도, 판단도 필요 없다.

라부부 열풍을 두고 일각에서는 '유치하다'는 평가도 나온다. 그러나 숫자는 다른 이야기를 한다. 팝마트의 올해 상반기 순이익은 전년 대비 400% 가까이 급증했고, 지난해 라부부 인형 하나로만 4억 2300만 달러가 넘는 매출을 올렸다. 젤리캣 역시 지난해 매출이 66% 늘었다. 이는 단순한 취향의 문제가 아니라 집단적 감정의 이동이다.

라부부는 아이가 되고 싶어서 사는 인형이 아니다. 너무 일찍 어른이 되었고, 그 대가를 돌려받지 못한 세대가 붙잡은 가장 안전한 위안이다. 인형이 귀여워서가 아니라, 현실이 견디기 어려울 만큼 냉혹해졌기 때문은 아닐까. 

wonjc6@newspi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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