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계선·반사회성 성격장애 진단받고 불면증·우울증 주장
法 "사건 당시 상황 상세하게 진술…항소심서 진술 바꿔"
[서울=뉴스핌] 김현구 기자 = 경계선 성격장애나 반사회성 성격장애 진단을 받았더라도 범행 당시 본인이 했던 발언과 행동을 구체적으로 기억하고 재판 진행 과정에서 기존의 진술과 배치되는 주장을 했다면, 심신미약 상태로 볼 수 없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대법원 3부(주심 오석준 대법관)는 살인, 사체유기 혐의로 기소된 윤모 씨에게 징역 25년을 선고한 원심 판결을 확정했다고 28일 밝혔다.
대법원 [사진=뉴스핌 DB] |
윤씨는 2021년 5월 한 중고거래 사이트에서 지적장애 3급인 A씨(30)를 만나 다음 달인 6월부터 교제 및 동거를 시작했다.
윤씨는 A씨와 동거를 시작한 이후 A씨가 외도한다고 생각하고 그를 지속적으로 추궁했으나 A씨는 외도 사실을 부인했다. 이에 윤씨는 집 안에 폐쇄회로(CC)TV를 설치하는 등 A씨를 감시하다가, 지난해 2월 A씨를 폭행한 뒤 난방이 되지 않는 베란다에 그를 감금했다.
처음에 윤씨는 주먹과 발로 A씨의 얼굴을 폭행하다가, 이후엔 길이 약 63cm, 직경 약 1.5cm, 무게 600g의 티타늄 강철제 삼단봉'으로 온몸을 때렸다. 당시 윤씨는 A씨에게 "죽을 때까지 맞아", "넌 살아서 못 나가" 등 그를 살해하겠다는 말을 수일간 반복했고, 그에게 음식과 물을 주지 않았으며 화장실도 가지 못하게 했다.
이 과정에서 윤씨는 A씨의 얼굴에 검정색 비닐봉투를 씌워 호흡을 하지 못하게 한 채 주먹으로 얼굴을 여러 차례 때렸으며, 담뱃불로 A씨의 맨살을 지지기도 했다. 폭행당하던 A씨가 실신하면 물을 뿌려 정신이 들게 한 뒤 다시 폭행했다.
A씨는 8일간 베란다에서 속옷만 입은 채 윤씨로부터 감금·폭행을 당하다 저체온증으로 사망했다. 이후 윤씨는 A씨의 사체를 옷가지로 덮어 보이지 않도록 했으며, 약 한 달 뒤인 지난해 3월 경찰에 의해 사체가 발견될 때까지 그대로 방치해 사체를 유기했다.
윤씨는 임신 24주 차로 A씨의 아이를 밴 상태이기도 했다.
1심은 "윤씨의 범행 수법은 극히 잔인하고 사체의 유기 과정에서 피해자의 인격에 대한 최소한의 존중도 찾아볼 수 없다"며 그에게 징역 25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윤씨는 A씨의 사망 후 마치 그가 생존해 있는 것처럼 그의 휴대전화를 이용해 그의 지인에게 카카오톡 메시지를 보내거나 피해자 명의로 월세를 내는 등 범행을 은폐하기도 했다"며 "윤씨의 범행 과정 및 범행 이후에 드러난 행동을 보면 범행에 대한 죄의식도 크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A씨는 지적장애 3급으로 윤씨의 이같은 행위들에 대해 제대로 방어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고 부연했다. 법원에 따르면 A씨는 폭행당하면서도 별다른 반항을 하지 않은 채 윤씨에게 잘못했다고 용서를 빌기만 했다.
재판부는 "무거운 형의 선고가 불가피하다"면서도 "다만 윤씨가 형사처벌을 받은 전력이 없는 점, 윤씨 자신도 태아의 친부를 살해했다는 사실로 인해 평생 멍에를 안고 살아가야 할 것으로 보이는 점 등을 참작했다"고 판시했다.
1심 선고 이후 윤씨는 형이 너무 무거워서 부당하다는 이유로, 검찰은 형이 가벼워서 부당하다는 이유로 각각 항소했다. 윤씨는 이 과정에서 당시 임신한 상태로 다이어트약을 먹고 잠을 자지 못하는 등 불면증과 우울증 등으로 인해 심신미약 상태에 있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2심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고 1심 판단을 유지했다.
재판부는 "윤씨는 범행으로부터 한 달가량의 시간이 지났음에도 경찰에 진술하면서 A씨에게 얘기한 내용이나 그를 폭행한 경위 등을 상세하게 진술했고, 자신의 범행을 숨기려 행동하는 등 정상적인 상황 인식능력과 판단 능력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이어 "또 윤씨는 장기간 다이어트약을 먹어 환청이 들리기도 하는 등 예민해졌다는 취지로 진술했으나 경찰에 자수한 이래 이같은 진술을 한 적이 없고, 오히려 '배려를 많이 하는 편이며 A씨가 거짓말을 자꾸 해서 화를 참지 못하고 때리게 됐다'는 취지로 진술했던 점에 비춰 이같은 진술을 믿기 어렵다"고 덧붙였다.
끝으로 재판부는 "임상 심리평가 결과상 윤씨가 경계선 성격장애나 반사회성 성격장애 진단을 받긴 했으나 이같은 사정만으론 그가 범행 당시 사물을 변별하거나 의사를 결정할 능력이 없는 미약한 상태에 있었다고 볼 수 없다"고 판시했다.
대법원도 하급심 판단이 옳다고 봤다.
hyun9@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