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교부 "크림인권결의안 성격에 회색지대 있어"
'크림반도 병합 복원'‧'러시아군 철군' 등 담겨
78개국 찬성·79개국 기권…찬성보다 기권 많아
[서울=뉴스핌] 이영태 기자 = 정부가 16일(현지시각) 유엔총회 제3위원회 북한인권결의안 표결에는 공동제안국으로 참여해 찬성표를 던졌으나, 러시아의 크림반도 강제병합 등을 규탄하는 '크림자치공화국 및 세바스토폴 인권 결의안'(크림 인권결의안)에는 기권한 것으로 나타났다.
크림 인권결의안에는 '크림과 우크라이나이나 여타 영토의 병합은 불법이며 즉각 복원', '러시아군의 철군' 요구 등이 담겼다. 정치·군사적인 내용이 많이 포함돼 '인권결의안'이라는 성격 자체에 대해 논란의 여지가 있을 수 있다는 게 외교부 설명이다.
유엔 총회 [사진=로이터 뉴스핌] |
그러나 미국·일본·프랑스·영국·독일 등 자유민주주의 진영 국가들이 찬성표를 던진 가운데, 이 나라들과 지향점이 같은 '가치외교'를 지향하는 한국이 북한인권결의안에는 찬성하면서 크림 인권결의안에 기권표를 던진 것은 '이중잣대'라는 비판을 피할 수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국은 같은 날 유엔총회 제3위원회에서 컨센서스로 통과된 북한인권결의안에 4년 만에 공동제안국으로 참여해 찬성표를 던졌다.
외교부 당국자는 정부의 기권 사유에 대해 "정치·군사적인 내용이 많이 들어가면, 어떤 인권결의안에도 기권이 많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외교부에 따르면 크림 인권결의안에는 유엔총회 회원국 중 78개국이 찬성했으며 14개국이 반대했다. 기권은 79개국이었다. 한국과 마찬가지로 결의안에 대한 러시아의 반발 가능성 등을 의식한 나라가 많은 것으로 해석된다.
이 당국자는 크림인권결의안 기권 배경에 대해 "결의안에 정치·군사적 내용이 폭넓게 담겨 있는 회색지대가 있는 결의안"이라며 "2016년 첫 채택된 이후 찬성 국가보다 기권 국가가 더 많은 편"이라고 말했다.
크림 인권결의안에 기권표를 던진 국가가 찬성 국가보다 1표 더 많다는 것은 한국과 마찬가지로 러시아의 영향력을 의식한 나라가 그만큼 많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앞서 한국은 지난달 31일 유엔총회 제3위원회에서 중국 신장·위구르 지역 인권 탄압을 규탄하는 성명이 채택했을 때도 동참하지 않았다. 북한에 적용되는 인권 기준이 중국·러시아에는 적용되지 않은 셈이다.
외교부 당국자는 국제사회 인권결의안 표결에 대한 정부의 이중잣대가 '글로벌 중추국가' 및 '자유민주주의 가치외교'라는 윤석열 정부 외교 기조와 맞지 않다는 지적에 대해 "인권결의안은 흑백으로 나눠서 찬반을 결정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며 "우리가 추구하는 '글로벌 중추 국가' 지향이 흔들리는 것은 아니다" 해명했다.
아울러 "우리 정부는 보편적 가치 존중을 기본으로 삼겠다는 강한 입장을 가지고 있다"며 "다른 나라 결의안에 대해서도 결의안 내용과 수위, 강도 등을 봐가면서 우리 입장을 정하게 될 것"이라고 언급했다.
북한인권결의안엔 적극적으로 참여하면서도 우크라이나 인권 상황은 외면한 것 아니냐는 질문에는 "인권 자체는 굉장히 정치적 현상"이라며 "군사·정치적 항목들로 인해 인권이 어떻게 됐다는 주술 관계가 없이 결의안에 이런 내용이 들어가게 되면 어쩔 수 없이 논란을 야기할 수 있지 않겠느냐"고 답했다.
이어 "다른 나라 결의안에 대해서도 결의안 내용과 수위, 강도 등을 봐가면서 우리 입장을 정하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medialyt@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