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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환의 예술가 이야기] 우수에 찬 영원한 방랑자, 구스타프 말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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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에 살고 사랑에 살고(22)

말러는 교향곡을 주로 만든 20세기 초반의 작곡가이다. 그는 9개의 완성된 교향곡과 1개의 미완성 교향곡을 작곡하는 과정에서, 교향곡을 내용면에서 그리고 연주 시간과 규모 면에서 새로운 발전의 단계로 올려놓았다. 또한 베토벤의 영향을 많이 받아 교향곡에 성악을 주입하는 시도를 자주 하였다.
그의 《교향곡 3번》은 일반적인 교향곡 레퍼토리 중에서 가장 긴 약 95분 시간을 소요한다. 또 일명 ‘천인 교향곡’으로도 불리는 《교향곡 8번》은 천 명이 넘는 연주자로 편성된 오케스트라에 의해 초연되었으며, 교향곡 중 가장 거대한 악기 편성법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는 또 교향곡 일부에 니체와 괴테의 철학, 중세 종교 상징주의와 영성을 표현하는 가사를 사용했다. 그의 작품은 이제 세계 주요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기본 레퍼토리의 일부가 되어 있다.
말러의 음악은 생전에는 그리 자주 연주되지는 않았고, 반응 또한 썩 좋지 않았다. 그나마 대중들로부터 어느 정도 인정을 받았던 작품은 상대적으로 짧고 고전적 형태를 띤 《교향곡 4번》과 1910년 뮌헨 초연에서 좋은 반응을 보인 《교향곡 8번》 정도에 불과했다. 그 이후에 쓴 곡들은 그의 생전에 연주되지 않았다. 그러나 1960년부터 레너드 번스타인에 의해 말러의 교향곡은 다시 주목을 받아 활발하게 연주되었으며, 말러 또한 오늘날 후기 낭만주의 시대의 대표적 작곡가로 위상이 재정립되었다.

말러는 방대한 악기 편성과 거대한 구상을 가진 9개의 교향곡을 완성하여, 후기 낭만파의 웅대하고도 화려한 양식 속에 독일의 전통을 꽃피웠다. 그는 또 가곡 분야에서도 《방황하는 젊은이의 노래》, 《죽은 아이를 그리는 노래》 등 여러 뛰어난 작품을 남겼다. 이처럼 작품이 교향곡과 가곡에 한정되고, 더구나 이질적인 분야가 훌륭히 융합된 예는 음악사상 드문 일이다.
“나에게 있어서 교향곡이란, 하나의 세계를 이룩하기 위해 동원할 수 있는 모든 기술적 수단을 사용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 같은 자신의 표현대로 말러의 교향곡은 하나의 거대한 세계나 다름없다. 그는 세상의 모든 소리들을 그의 교향곡 속에 담아내려는 듯 갖가지 악기들을 총동원해 온갖 신기한 소리들을 만들어내었다. 그의 교향곡에서는 알프스 산중에서나 들을 수 있는 소방울 소리가 들려오기도 하고, 때로는 군대의 신호나팔 소리나 술집의 밴드 소리가 끼어들기도 한다. 간혹 거대한 망치가 악기로 등장해 관객들에게 충격을 주기도 하며, 썰매방울 소리가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만들기도 한다. 그런가 하면 회초리나 딱따기 같은 이상한 물건들도 오케스트라의 타악기로 당당하게 등장한다.
교향곡을 통해 인생을 표현하고자 했던 말러에게는 기존에 주로 사용되던 악기들만으로는 그 모든 것을 이야기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는 생각을 했었던 것이다. 말러는 자신이 원하는 바로 ‘그 소리’를 만들기 위해 심혈을 기울였던 것이다.

교향곡 6번과 7번에 사용된 소방울에 대한 일화이다. 말러는 오스트리아 산중의 느낌을 음악으로 표현하기 위해 소방울 세트를 특별히 주문 제작했다. 그리고 리허설과 연주를 할 때마다 항상 가지고 다녔다. 1906년 11월, 뮌헨에서 교향곡 6번을 리허설할 때는 연주자의 목에 커다란 소방울을 걸게 한 후 앞뒤로 오가게 했다. 음악적 표현을 위해선 이처럼 우스꽝스런 연주법까지도 마다하지 않았던 것이다.
또 말러 음악을 연주하는 동안에는 연주가들이 수시로 무대 앞뒤를 들락날락하기도 하고,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나는가 하면, 악기의 관을 높이 들어 올린 채 연주하기도 한다. 이 모든 것들은 말러가 악보에 지시한 특별한 음향효과 때문이다.
교향곡을 연주할 때 성악가들이 입장하는 시점도 종종 문제가 되고 있다. 말러는 교향곡 속에 인간의 목소리를 편성함으로써 베토벤의 ‘합창 교향곡’의 전통을 이어받았다고 평가된다. 말러의 교향곡 2번과 3번, 4번, 8번과 《대지의 노래》에 등장하는 인간의 목소리는 오케스트라의 악기처럼 여러 악기들과 더할 나위 없이 잘 어울린다. 그러나 성악이 가미된 교향곡이라 해도 《교향곡 8번》과 《대지의 노래》를 제외한 나머지 성악 교향곡의 경우 모든 악장에 성악가가 등장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기에 독창자들이 언제 등장해야 할지, 합창단이 어느 부분에서 일어나야 할지를 사전에 정해야 하는 문제가 있는 것이다.

말러의 10개 교향곡 중에서도 2번 《부활》은 가장 높은 대중적 인기를 누리는 작품으로, 삶과 죽음이 교차하는 거대한 한 편의 드라마이다. 그가 이 제2번 교향곡의 작곡에 매진하고 있던 1889년에는 그의 어머니와 여동생이 세상을 떠났다. 설상가상으로 그해 11월에 있었던 교향곡 1번의 초연은 말러에게 큰 실망을 맛보게 한다. 그에게 연이어 닥친 이런 불행은 이전부터 구상하고 있던 교향곡 제2번의 내용에 그대로 반영되었다.
제1악장은 ‘장송행진곡’으로 거인이 무덤에서 그의 생애를 돌아보는 것으로 시작되며, 2악장에서는 과거의 회상이 순간의 햇빛처럼 찬란하게 그려진다. 3악장에서는 꿈같이 아름다웠던 현실이, 4악장에서는 독창자 알토가 등장해 ‘신에게로 다시 돌아갈 것이다’라고 노래하며, 마지막 제5악장에서는 부활을 노래한다. 이 제5악장은 부활교향곡의 백미로 가공할 만한 스케일과 신비감을 자아낸다. 또 여기에는 소프라노와 알토의 독창과 중창, 혼성합창이 골고루 사용되고 있다.

이 말러의 《교향곡 2번》을 가장 잘 지휘하는 것으로 정평이 나있는 사람은 뜻밖에도 정통 음악인이 아닌 금융잡지사 사장 길버트 카플란이다. 1965년 뉴욕의 카네기홀에서 레오폴드 스토코프스키가 지휘하는 말러의 2번 교향곡 ‘부활’을 숨죽이며 듣던 23살의 청년 카플란은 번개가 자신의 몸을 관통하는 듯한 충격을 받게 된다. 그날부터 청년은 자신이 죽기 전에 말러의 '부활'을 직접 지휘해보겠다는 간절한 소망을 마음에 품었다. 그러나 그는 음악이라곤 거의 문외한에 가까운 경영학도였다.
경영대학원을 졸업한 카플란은 월가로 진출하여 상당한 성공을 거둔다. 사업을 궤도에 올려놓은 그는 청년시절의 꿈이었던 말러의 ‘부활’을 직접 지휘해 보기 위해서 음악공부를 시작했다. 1983년 카플란이 말러의 ‘부활’을 처음 들은 지 18년이 지났을 때, 그는 마침내 카네기홀 무대에 올라 아메리칸 심포니를 이끌고 ‘부활’을 지휘했다. 그가 처음 ‘부활’을 들었던 바로 그 장소이자 그 오케스트라였다. 그로서는 일생일대의 소원을 이루는 순간이었다. 그의 지휘는 사람들의 예상을 깨고 엄청난 호응을 받는다. 그의 지휘가 성공적으로 끝나자 전 세계에서 지휘 요청이 쏟아졌다. 런던 심포니, 로스앤젤레스 필 등으로 부터…

말러의 천인교향곡 연주 공연 <사진=이철환>

구스타프 말러(Gustav Mahler, 1860~1911)는 1860년 체코의 보헤미아 지방 칼리슈트의 유대인 집안 열네 형제 중 둘째로 태어났다. 아들이 음악에 재능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부모는 그가 여섯 살 때 피아노 레슨을 받게 했다. 열다섯 살이 되면서는 빈 음악원에 입학하여 피아노 연주법과 화성학, 작곡법을 배웠다. 3년 뒤에는 빈 대학에 입학하였는데, 안톤 브루크너가 거기서 강의하고 있었다.
말러는 대학에서 음악뿐만 아니라 역사와 철학도 공부했다. 대학에 다니던 중 첫 주요 작곡 시도로 칸타타 《탄식의 노래》를 지었다. 그러나 이 곡은 콩쿠르에서 낙방했는데, 이 일을 계기로 그는 작곡가가 아니라 지휘자의 길로 들어서기로 마음을 바꾼다. 또 그렇게 하는 것이 안정적인 수입을 보장하여 가난한 집안을 돌보는 데 도움이 되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말러의 지휘자로서의 삶은 1880년 오스트리아의 휴양지 바트 할의 여름 극장에서 시작되었다. 그 다음해부터는 차례로 큰 오페라 하우스의 지휘자 자리를 가질 수가 있었다. 1881년 류블랴나, 1882년 올로뮈츠, 1883년 빈, 1884년 카셀, 1885년 프라하, 1886년에는 라이프치히로 갔다.

1887년, 그는 몸이 아프던 아르투르 니키쉬를 대신해 바그너의 《니벨룽겐의 반지》를 지휘하며 명성을 확고히 다질 수가 있었다. 이처럼 점차 지휘자로서 성공을 거두게 되면서 경제적인 안정을 얻었고 명성도 높아지게 된다. 1891년 그는 함부르크 오페라와 생애 첫 번째 장기계약을 맺었고 거기서 1897년까지 머물렀다. 작곡가로서의 활약이 시작된 것도 이 기간부터인데, 그즈음 교향곡 1~3번을 작곡하였다.
1897년 37세가 되던 해 그에게 뜻밖의 행운이 찾아 들었다. 오스트리아 제국에서 가장 존경받는 음악적 지위인 빈 국립 오페라하우스의 감독직을 제안받은 것이다. 그러나 그 자리는 당시의 법에 따르면 유대인은 맡을 수가 없었다. 이 때문에 말러는 유대교에서 로마 가톨릭교로 종교를 바꾸게 된다.
그가 감독으로 재직한 10년 동안 빈 오페라의 레퍼토리와 예술적 기준에 큰 변화가 있었다. 이는 그의 치열한 성격과 완벽주의와 완고한 의지에서부터 비롯되었다. 이 기간에 말러는 교향곡 4번부터 8번, 《뤼케르트 가곡》, 《죽은 아이를 그리는 노래》, 《북 치는 소년》 등을 작곡했다.

한편, 말러의 개인적 삶은 불행의 연속이었다. 1902년 말러는 알마 쉰들러와 결혼하여 두 딸을 두었다. 그런데 첫째 딸은 성홍열로 다섯 살에 죽게 된다. 딸의 죽음으로 비탄에 빠져 있던 그에게 또 다른 불행이 찾아든다. 자신에게 심장병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의사로부터 운동을 제한하고 걸음 수를 세라는 처방을 받았다. 또 예술적 문제에 대한 그의 완고함은 오페라단 안팎에서 많은 적을 만들어내었다. 여기에 언론의 반유대주의적인 공격은 그를 더욱 괴롭혔다. 결국 1907년 빈 오페라 감독직을 사임하게 된다.
이후 뉴욕의 메트로폴리탄 오페라로부터 지휘자 제안을 받았다. 1908년 거기에서 한 시즌을 지휘했지만, 이듬해 토스카니니에게 밀려나게 된다. 때마침 뉴욕 필하모니에서 요청이 있어 1908년에서 1911년까지의 세 시즌 동안을 지휘했다. 이 시기에 그는 《대지의 노래》와, 마지막 완성작이 된 《교향곡 9번》을 완성했다.

그즈음 말러에게는 여러 가지 불행한 일들이 겹쳐서 일어났다. 우선 부인 알마의 외도이다. 말러의 부인 알마 쉰들러는 20세기 가장 유명한 팜므 파탈(Femme fatale)이었다. 그녀는 말러의 부인이었을 뿐만 아니라 뛰어난 건축가 발터 그로피우스의 부인이었고, 유명한 작가 프란츠 베르펠의 부인이기도 했다. 이처럼 알마는 세 번이나 결혼했기 때문에 남편 셋 중 누구의 성(姓)을 따를 것인지 난감해 했다는 얘기가 전해진다.
1879년 비엔나의 상류층 가정에서 태어난 알마는 미모와 지성으로 당시 사교계를 주름잡았던 인물이었다. 여기에 17개의 가곡을 작곡한 재능있는 작곡가이기도 했다. 알마의 아버지는 비엔나의 여러 지식인, 예술가들과 친분을 맺고 지냈다. 그중에는 구스타브 클림트도 포함되어 있었다.
알마는 22세 때 말러에게 청혼을 받고 그와 결혼하게 된다. 당시 그녀의 부모는 극렬히 반대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지만 말러의 나이가 가장 큰 문제였다. 당시 말러는 알마보다 20살이나 많았고 심지어 장인보다도 한 살이 더 많았다. 알마와 말러의 결혼생활은 그다지 순탄치가 않았다. 알마는 음악과 회화에 조예가 깊었으나, 결혼으로 인해 예술활동을 계속하는 데 어려움이 있었다. 말러 또한 알마가 예술활동을 하는 걸 좋아하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알마는 자기의 예술에 대한 열망을 충족하기 위해 다른 예술가들과의 스캔들을 자주 일으켰다. 첫 상대는 건축가인 발터 그로피우스였다. 이 사실을 안 말러는 유명한 정신분석학자인 프로이트를 찾아가 자문을 받기까지 했다. 이후 말러가 1911년 세상을 떠나자 알마는 그로피우스와 결혼했다. 그러나 알마는 그로피우스와의 결혼생활 중에도 여러 다른 남자들과 염문을 뿌리고 다녔다. 그러다가 1920년 그로피우스와 이혼하고 소설가 베르펠과 결혼했다.

말러의 또 다른 불행은 그의 만성적인 심장병현상이었다. 1911년 2월, 그는 연쇄상구균 감염으로 인한 발열이 있는 상태에서 무리하게 공연을 가졌다가 결국 쓰러지고 만다. 결국 심장발작 증세로 1911년 세상을 떠났는데, 그의 나이 50세였다. 시신은 유언에 따라 빈 외곽의 그린칭 공동묘지에 잠든 그의 딸 옆에 안장되었다. 이에 따라 작곡 중이던 《교향곡 10번》은 미완성으로 남게 되었다.

말러의 인생은 결코 평탄하지가 않았다. 남들은 한두 개도 겪기 어려운 커다란 슬픔과 고통을 여러 가지 안고 살아가야 했다. 무엇보다 체코의 보헤미아 지방 출신이어서 당시 주류사회에 끼기가 어려웠다는 것, 열네 명의 형제 중 여덟 명이 어린 시절 사망하는 것을 보면서 살아왔다는 것, 가톨릭으로 개종은 했지만 유태인이었기에 유무형의 차별을 당했다는 것, 사랑하는 딸을 다섯 살이라는 어린나이에 저세상으로 보낸 아픔을 안고 살았다는 것. 이뿐만 아니라 그는 사랑하는 아내의 공공연한 불륜을 지켜봐야 했고, 자신의 불치병으로 인한 고통까지 안고 살아야 했다.

말러는 스스로 이런 탄식을 했다고 한다.
“나는 3중으로 고향이 없다. 오스트리아 안에서는 보헤미안으로, 독일인 중에서는 오스트리아인으로, 세계 안에서는 유대인으로서. 그 어디에서도 이방인이었고 환영받지 못했다.”
그런데 역설적이게도 그에게 닥친 이러한 고난을 극복하려는 의지가 오히려 커다란 영감과 에너지가 되어 위대한 말러 음악을 탄생시킨 것은 아닐까?

이철환 객원 편집위원 mofelee@hanmail.net (전 재정경제부 금융정보분석원장, 전 한국거래소 시장감시위원장. 문화와 경제의 행복한 만남 등 다수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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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P모간은 2025년 말 온스당 3,600달러대에서 2026년에는 4,000달러를 넘어설 수 있다는 전망을 내놓고, 일부 프라이빗 뷰에서는 5,000달러 안팎까지 거론한다. 골드만삭스·UBS 등도 4,000~4,500달러 구간을 기본 밴드로 제시하면서, 구조적 강세장이 이어질 경우 5,000달러 돌파 가능성까지 열어두는 분위기다. 이 같은 '슈퍼 헤지' 논리는 세 축에 기대고 있다. 첫째, 중앙은행의 공격적인 금 매수와 디달러라이제이션 흐름이다. 러시아 준비자산 동결 이후 "제재로 묶이지 않는 준비자산"을 찾는 움직임이 강화되면서, 다수 중앙은행이 외환보유액에서 달러·유로 비중을 줄이고 금 비중을 늘리는 방향으로 서서히 포트폴리오를 바꾸고 있다. 둘째, 미국을 비롯한 글로벌 재정악화와 부채 누적이다. 천문학적 정부부채와 확대된 재정적자는 통화가치 희석 우려를 키우며 "법정통화의 거울"로서 금의 역할을 다시 부각시키고 있다. 셋째, 연준의 완화 전환과 약달러 구도다. 금리가 내려가면 무이자 자산인 금의 기회비용이 줄고, 달러 약세는 달러 표시 금 가격을 끌어올리는 이중 효과를 낳는다. 기관투자가들의 인식도 이를 뒷받침한다. 나티시스 설문에서 글로벌 기관의 3분의 2는 "2026년에는 금이 코인보다 더 나은 성과를 낼 것"이라고 답하며 금을 1순위 방어자산으로 꼽았다. 동시에 상당수 기관이 전통적인 60:40 포트폴리오 대신 인프라·부동산·원자재·금 등을 섞은 60:20:20 구조를 선호한다고 응답해, 금과 실물자산을 "인플레이션·재정·지정학 리스크가 겹친 시대의 전략자산"으로 재평가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다만 IB들은 2025년 급등 뒤 2026년 일부 구간에서 단기 조정과 높은 변동성은 불가피하다고 보면서도, 조정이 나오더라도 "고점을 한 단계 올리는 조정"이라는 표현을 쓰며 중장기 방향성만큼은 강하게 위를 가리키고 있다. ◆ 코인: '대체 가치 저장 수단'...그러나 여전히 '실험 구역' 코인에 대한 월가의 시각은 한 줄로 "커진 건 맞지만, 아직은 실험 구역"이다. JP모간은 비트코인을 포함한 디지털 자산을 "달러에 대한 또 하나의 도전자"라고 부르면서도, 극단적인 변동성과 짧은 히스토리를 이유로 전략적 코어 자산이 아니라 위성(satellite) 성격의 위험자산으로 다뤄야 한다고 경고한다. 2024년 초 2조달러 수준이던 크립토 전체 시가총액이 2025년에는 4조달러 안팎까지 불어난 가운데, 규제 환경이 ETF·ETP 승인 등으로 제도권 친화적으로 바뀌며 비트코인을 '가치 저장 수단'으로 보는 시각이 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다만 실제 결제·상거래 규모는 여전히 수백억 달러 수준에 머물며, 일상적 화폐나 결제 인프라로서의 역할은 초기 단계라는 점이 반복해서 지적된다.​ UBS와 같은 보수적인 하우스는 이런 변화를 인정하면서도 "코인은 어디까지나 투기적 자산"이라는 입장을 고수한다. UBS CIO는 비트코인 변동성이 연 70~80% 수준으로 전통 자산 대비 현저히 높고, 70% 이상 급락하는 대형 조정이 여러 차례 반복된 탓에 포트폴리오의 전략적 축으로 편입하긴 어렵다고 본다. 대신 장기 잠재력을 믿는 투자자라면 "완전 손실이 나도 전체 계획이 흔들리지 않을 정도의 극소 비중으로, 장기 보유하는 전략" 정도만 고려하라고 조언한다. 반대로 SSGA나 모간스탠리, 반에크 등 디지털 자산에 우호적인 기관들은 비트코인이 전통 자산과의 상관관계가 낮고 장기 위험조정 수익이 높다는 점을 들어, 1~4% 수준의 소규모 전략적 배분이 포트폴리오 다변화에 기여할 수 있다는 분석을 내놓는다.​ 기관 머니의 온도차도 뚜렷하다. 나티시스 2026 인스티튜셔널 서베이에 따르면 글로벌 기관의 36%는 향후 크립토 투자 비중을 늘릴 계획이라고 답하지만, 동시에 66%는 "2026년 성과는 금이 크립토를 이길 것"이라고 응답했다. EY·코인베이스가 2025년 초 실시한 설문에서도 응답 기관의 59%가 "AUM의 5% 이상을 디지털 자산에 배분할 계획"이라고 답해 성장 잠재력을 보여줬지만, 가장 큰 우려 요인으로 여전히 변동성과 규제 리스크를 꼽았다. ◆ 원자재: AI·에너지 전환·안보가 만든 '전략자산'의 귀환 2026년 원자재 시장은 더 이상 단순한 인플레이션 헤지가 아니라, AI·에너지 전환·안보 이슈가 맞물린 '전략자산'으로 재조명되고 있다. BNY멜론, JP모간, UBS, 냇웨스트, 피델리티 리포트는 접근법은 조금씩 다르지만, 공통적으로 원자재·에너지·전환 메탈에 구조적인 강세 요인이 집중되고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BNY멜론은 AI 데이터센터 구축, 전력 인프라 확충, 에너지 전환과 함께 각국의 방위·인프라 지출이 향후 수년간 원자재 수요를 떠받칠 것이라고 본다. JP모간은 천연가스와 전력을 "AI 혁명의 병목(bottleneck)"으로 규정하며 가스 발전, LNG 프로젝트, 송전망 등에 장기 투자 기회가 많다고 짚었다. UBS는 구리·알루미늄 등 산업금속 비중 확대를, 냇웨스트는 희토류·전략자원이 '공급망 안보'와 직결되면서 지정학적 중요성이 커질 것이라고 제시하고, 피델리티는 구조적으로 높은 인플레이션 환경에서 실물자산·절대수익 전략이 전통 60:40 포트폴리오의 필수 보완재가 된다고 분석했다. 나티시스 설문에서도 기관투자가의 65%가 전통 60:40 대신 인프라·부동산·원자재·금 등을 섞은 60:20:20 구조가 2026년에 더 높은 수익을 낼 것이라고 답해, 원자재·실물자산을 '필수 축'으로 보는 인식 전환이 확인된다.​ 블룸버그NEF와 IEA 자료를 인용한 보고서들은 AI 데이터센터와 전력망 확충 수요만으로도 2030년까지 전 세계 구리 수요의 2~3%포인트 추가 상향을 가져올 수 있다고 추정한다. AI 데이터센터는 단일 시설당 수만 톤 단위의 구리와 막대한 전력을 소모하는 만큼, 이미 공급 부족이 우려되는 구리·은·희토류·갈륨 등 핵심 금속 시장에 추가적인 타이트닝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 전기차·배터리·재생에너지 확대로 리튬·니켈·코발트 등 전환 메탈 수요가 2026년 한 해에만 30~40% 급증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오고 있어, 에너지 전환과 AI가 결합된 새로운 '미니 슈퍼사이클' 가능성이 거론된다.​ 인플레이션·무역·정책 측면에서의 환경도 원자재에 우호적이다. 모간스탠리 등은 미국·유럽에서 관세·보호무역 정책이 상수로 남는 한, 명목 물가가 2%를 상회하는 기간이 길어질 수 있다고 경고하면서, 과거 데이터상 인플레이션이 2%를 넘는 구간에서 원자재 상품 수익률이 평균적으로 기타 자산 대비 20%포인트가량 우위였다고 지적했다. 동시에 에너지 안보 우려와 탄소 규제가 섞이면서, 가스·LNG·원유·우라늄은 "절대 줄일 수 없는 베이스 에너지"로, 구리·알루미늄·리튬·희토류는 "에너지 전환을 위한 전략 금속"으로 포지셔닝이 재정의되고 있다. 이런 환경 속에서 월가 IB와 기관투자가들은 2026년 포트폴리오에서 원자재 비중을 한 단계 높이는 전략을, "달러·채권·전통 주식만으로는 감당하기 어려운 에너지·인플레이션·안보 리스크를 헷지하는 가장 실질적인 방법"으로 제시했다. kwonjiun@newspim.com 2025-12-15 0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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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대통령, 전재수 장관 면직안 재가 [서울=뉴스핌] 박찬제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11일 '통일교 금품수수' 의혹을 받는 전재수 해양수산부 장관에 대한 면직안을 재가했다. 대통령실 대변인실은 이날 오후 언론 공지를 통해 "이재명 대통령은 전재수 해양수산부 장관에 대한 면직안을 재가했다"고 밝혔다. [영종도=뉴스핌] 김학선 기자 = 통일교로부터 금품을 받았다는 의혹이 제기된 전재수 해양수산부 장관이 11일 오전 'UN해양총회' 유치 활동을 마친 후 인천국제공항 제2여객터미널을 통해 귀국해 입장을 밝힌 후 공항을 나서고 있다. 전 장관은 "직을 내려놓고 허위사실 의혹을 밝힐 것"이라고 밝혔다. 2025.12.11 yooksa@newspim.com 통일교 측으로부터 금품을 받았다는 의혹이 불거진 전 장관은 앞서 "장관직을 내려놓고 당당하게 응하는 것이 공직자로서 해야 할 처신"이라며 사의를 표명했다. 전 장관은 이날 오전 인천국제공항으로 입국하면서 기자들과 만나 '통일교 금품 수수 의혹'에 대해 "전혀 사실무근"이라면서도 사의를 밝혔다. 그는 "흔들림 없이 일할 수 있도록 제가 해수부 장관직을 내려놓는 것이 온당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밝혔다. 전 장관은 의혹에 대해 "전혀 사실무근이고, 불법적인 금품수수는 단언컨대 없었다"며 "추후 수사 형태든지, 아니면 제가 여러 가지 것들 종합해서 국민들께 말씀드리거나 기자간담회를 통해 밝혀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전 장관은 "(통일교 측으로부터)10원짜리 하나 불법적으로 받은 사실이 없다"면서 "600명이 모인 장소에서 축사를 했다는 것도 사실무근"이라고 반박했다. 앞서 민중기 특별검사팀은 지난 8월 윤영호 전 통일교 세계본부장으로부터 2018∼2020년께 전재수 당시 더불어민주당 의원에게 명품 시계 2개와 함께 수천만 원을 제공했다는 취지로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면서 한일 해저터널 추진 등 교단 숙원사업 청탁성이라고 설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pcjay@newspim.com 2025-12-11 1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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긍정 영향 종목

  • Lockheed Martin Corp. Industrials
    우크라이나 안보 지원 강화 기대감으로 방산 수요 증가 직접적. 미·러 긴장 완화 불확실성 속에서도 방위산업 매출 안정성 강화 예상됨.

부정 영향 종목

  • Caterpillar Inc. Industrials
    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 시 건설 및 중장비 수요 불확실성 직접적. 글로벌 인프라 투자 지연으로 매출 성장 둔화 가능성 있음.
이 내용에 포함된 데이터와 의견은 뉴스핌 AI가 분석한 결과입니다. 정보 제공 목적으로만 작성되었으며, 특정 종목 매매를 권유하지 않습니다. 투자 판단 및 결과에 대한 책임은 투자자 본인에게 있습니다. 주식 투자는 원금 손실 가능성이 있으므로, 투자 전 충분한 조사와 전문가 상담을 권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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