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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VIP 박근혜

기사입력 : 2017년03월22일 10:34

최종수정 : 2017년03월22일 12:37

[뉴스핌=이성웅 기자] VIP(Very Important Person). 본 뜻이 요인(要人)이기에 청와대나 관가에선 대통령을 칭하는 말로 흔히 사용된다.

국정농단 사태의 핵심 피고인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도 법정에서 종종 자신의 행위에 대해 ‘VIP의 지시였다’고 진술했다.

각인 효과 탓일까, 파면된지 11일만 공식석상에 모습을 드러낸 박근혜 전 대통령은 여전히 ‘현직 대통령’이라는 인상을 줬다. 정확하게는 박 전 대통령을 둘러싼 환경이 그랬다.

지난 21일 박 전 대통령이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검에 출석하기 수시간 전, 경찰은 철통 경비태세를 갖추고 있었다. 인근에서 지지 시위와 구속촉구 시위가 예정돼 있어 그러려니 했다.

지검 입구에서 신분증을 맡기고 출입증을 받았을 때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주민등록번호 13자리가 그대로 적혀있는 비표는 난생 처음이었다.

전날 출입신청서를 작성할 때 주민번호를 적는 곳이 있어 설마했지만, 비표에 적혀 있을지는 상상도 못했다.

신분 확인을 확실히 하려는 청와대 경호실의 의도를 이해못할법도 없다. 그래도 출입기자단과 검찰이 몇번의 과정을 거쳐 출입 신청을 했는데 굳이 그럴 필요까지 있었을까라는 생각이 계속됐다. 범죄자들이 '머그샷(Mugshot·범인 식별용 얼굴 사진)'을 찍을 때도 주민번호는 안 적혀 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피의자 신분으로 소환된 지난 21일, 서울중앙지검에선 기자들에게 주민번호 13자리가 버젓이 적힌 출입증을 배부했다. 이성웅 기자

지검에 들어가서도 잠시 후 소환되는 피의자가 현직 대통령인지 파면 대통령인지에 대한 헷갈림은 계속됐다. 물론 현직 대통령이라면 올 까닭이 없다.

검찰청 직원들은 내내 “VIP 오시면”, “VIP 오실 때”라는 말을 하며 업무를 공유했다. 검찰청 직원들한테 박 전 대통령은 여전히 VIP였다.

오전 9시24분. 박 전 대통령이 지검에 도착했다. 그는 “국민께 송구하다. 성실히 조사받겠다”라는 말만 남긴 채 들어갔다. 미리 모여 질문을 정해놓은 기자들의 입이 민망해졌다. 조사실에서 호칭도 ‘대통령’이었다. 피의자라는 호칭은 조서에나 쓰였다.

지금은 리틀 김기춘으로 불리지만,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이 대검찰청 중수부 재직 당시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을 향해 “노무현씨, 당신은 현직 대통령도 아니고 사법시험 선배도 아닌 뇌물수수 혐의자로 이 자리에 앉아 있다”라고 한 말은 아직도 회자된다. 전직 대통령을 향한 그때의 패기를 지금은 찾아보기 힘들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21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검에 피의자 신분으로 출석하고 있다. 김학선 기자 yooksa@

조사 과정을 녹화하지 않은 부분도 석연찮다. 검찰 측은 “박 전 대통령과 변호인들이 영상녹화에 동의하지 않아 녹화하지 않는다”라고 전했다.

논란이 일자 박 전 대통령 측 손범규 변호사는 “법률상 검찰이 동의 없이 그냥 녹화할 수 있으나, 검찰이 동의여부를 물어와 부동의한다고 했을 뿐이다”고 해명했다.

검찰이 알아서 편의를 제공했다는 박 전 대통령 측 주장대로라면, 조사실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그들만이 알 것이다.

그런가 하면 박 전 대통령이 22일 오전 조사를 마치고 지검을 빠져나가자 청와대 경호실 직원이 우루루 나와 버스에 탑승했다.

뇌물수수 등 13가지 혐의를 받고 있는 박근혜 전 대통령이 22일 오전 검찰조사를 마치고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검 청사를 나서고 있다. 김학선 기자 yooksa@

경호실 직원들이 탑승한 버스는 30인승이었다. 여기에 박 전 대통령 근접 경호를 위한 승용차 2대와 7인승 승합차에 탄 인력, 삼성동 사저에서 대기 중인 인원까지 합치면 족히 40명은 넘을 것으로 추정된다. 안전 때문이라고 치자.

그러나 전직 대통령 예우에 관한 법률과 경호실 등에 따르면 파면 대통령에 할당되는 경호원은 20~25명이다.

문득 떠오르는 게 있다. 현직 대통령이 방문하는 장소 인근은 전파가 차단되는 것으로 알고 있다. 다행히 이날 검찰에서 LTE 통신은 잘 터졌다.

 

[뉴스핌 Newspim] 이성웅 기자 (lee.seongwoong@newspi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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