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핵심 요약
beta- 23일 중국 위린 부랑허 여성민병대가 사막화 방지 성과를 소개했다
- 여성 54명은 1974년부터 사막과 싸워 녹지와 농지를 일궈냈다
- 1만4000무 사막에 나무 35만 그루를 심어 황사를 크게 줄였다
!AI가 자동 생성한 요약으로 정확하지 않을 수 있어요.
삼성반도체 공장 시안 북쪽, 한국인 많이 찾아
[베이징=뉴스핌] 최헌규 베이징 특파원= '부랑허(补浪河) 여자민병치사련(治沙连)'. 산시성(섬서성) 위린(楡林)시 서쪽 부랑허라는 지역에서 사막을 다스린 여성 민병대를 일컫는 단체 이름이다.
중국 산시성 북쪽 산베이(陝北, 섬서성 이북)의 중심도시 위린의 서북쪽은 네이멍구의 유명한 마오우수(毛乌素) 사막 남단과 맞닿아 있다. 네이멍구와 함께 매년 봄이면 한국에 까지 뿌연 황사를 일으켰던 발원지 중 한 곳이기도 하다.
오랜 세월에 걸쳐 산시성 위린을 포함한 중국 서북부 일대는 황사 발원지로서 중국 수도 베이징을 비롯해 한반도에 황사(沙尘暴·사천바오)를 발생시켰다. 최근년들어서는 매년 봄이면 한국의 하늘을 뒤덮었던 모래먼지, 황사가 크게 잦아들었다.
기자가 일하고 있는 베이징에서 어쩌다 서울서 오는 한국인 지인들을 만나면 "어떻게 중국의 하늘이 이렇게 깨끗해졌냐"며 대부분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 이후 공장들을 허베이성 탕산 등지로 이전한 것과 함께 바로 산시성 위린같은 도시 처럼 수십 년에 걸쳐 사막화 예방, 녹지 조림에 힘써온 결과다.
뉴스핌은 10월 20일부터 나흘간 황사가 잦아든 이유와 황사를 발생시켰던 사막이 인간의 노력으로 어떻게 변했는지, 사람들은 사막이었던 그 땅을 어떻게 활용하며 삶을 이어가고 있는지 취재하기 위해 섬서성 위린시 북서부 지역을 찾았다.

1974년 중국 사회가 문화대혁명으로 혼란스럽던 시절, 위린시 위성구 부랑허마을에서는 18세의 앳된 소녀들이 삽과 총을 옆에 끼고 군 생활과 똑같이 야오동(토굴집)에 거주하면서 사막과 싸웠다. 이들은 결국 사막을 녹지로 바꾸는 오아시스의 기적을 일궈냈다.
23일 낮 '부랑허 여자민병치사련'을 찾았을 때 이정표 등에 한자 외에 한글도 영어와 함께 병기돼 있었다. '한국인 중에 누가 외진 이곳까지 찾는다고 안내문에 한글까지 표기해 놨을까.'
이런 의문이 들어 물어보니 안내원은 산시성(섬서성)의 성도 시안에 있는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을 거론하면서 북쪽 도시인 위린도 한국인들에게 주목받고 있다고 말했다. 이 안내원은 얼마 전 목축업 사료 산업에 종사하는 한국인 기업가가 이곳을 다녀갔다고 덧붙였다.
'부랑허(补浪河) 여자민병치사련(治沙连·사막관리연대)'. 치산(治山)·치수(治水)라는 말은 익숙하게 들었지만, 치사(治沙·즈사)는 좀처럼 듣지 못했던 표현이다. 사막을 다스리고 관리한다는 뜻인데, 사막이라는 자연환경을 끼고 있는 지역에서는 아주 흔히 쓰는 말이라고 안내원은 설명했다.
'모래가 밀려오자 사람이 물러났고(沙进人退), 이제 다시 녹음이 밀어올리면서 사막이 퇴각하고 있다(绿进沙退).' 사막을 다스린 부대인 '부랑허 여성 치사연대'의 기적 같은 사막화 퇴치 노력의 성과를 한마디로 압축하는 말이다.

세계적으로 '악명 높은' 마오우수 사막은 홍수 때 강물이 굽이쳐 흐르듯 살아 있는 생명체처럼 움직이며 위린 북부의 농지와 가옥을 삼키고 마을을 통째로 뒤덮었다. 부랑허 여자민병대 안내원은 이처럼 움직이는 사막의 모래가 물처럼 흐른다고 해서 '유사(流沙, 움직이는 모래)'라고 부른다고 설명했다.
산시성 위린과 같은 중국 서북부 사람들은 수천 년 동안 이 유사에 순응하며 살아왔다. 홍수를 피해 마을을 떠나듯 사람들은 모래를 피해 새로운 고향을 찾아 떠났다. 하지만 신중국 건국 이후 사막화 방지에 대한 새로운 인식이 싹을 틔웠다.
부랑허 전시물은 신중국 건국 이후 사막을 다시 삶의 터전으로 이용하기 위한 치사(治沙) 활동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고 설명하고 있었다. 이른바 '사막과의 전쟁'이 시작된 것이다. 이 전쟁의 최일선 부대가 바로 '부랑허 여자민병치사련'이다.
부랑허 치사련은 문화대혁명이 한창이던 1974년 18세 전후의 여성 54명으로 발족했다. 마오우수 사막과 마주한 위린시 서부의 최일선이자 최후의 보루로서 동쪽으로 밀려오는 사막과의 전쟁을 수행했다.

"여기가 마지노선이었어요. 여기가 뚫리면 위린과 산베이의 적지 않은 사람들이 오랜 삶의 터전을 잃고 등짐을 꾸려야 했죠." 앳된 소녀들로 구성된 부랑허 부대 치사련은 사회적으로 큰 감화를 줬다. 사막화 방지 노력은 여러 세대에 걸쳐 계승되면서 오늘의 성공을 거뒀다고 관계자는 설명했다.
부랑허 치사련 관계자의 설명에 따르면 여성 치사련이 뿌린 씨앗은 지금까지 1만4000무의 황량한 사막을 초록이 가득한 오아시스로 바꿔 놓았다. 단순히 황사 발생이 줄어든 것만이 아니라, 황량한 사막이 초목이 자라고 옥수수와 조를 수확하는 농지로 변했다. 치사련 관계자는 "한때 사막이었던 이곳에는 지금 소나무와 미루나무, 느릅나무가 35만 그루나 자라고 있다"고 자랑스럽게 말했다.
사막의 모래폭풍과 거센 사막화는 폭풍우를 동반한 태풍처럼 집과 농토, 삶의 터전과 마을을 통째로 삼키는 자연재해다. 인간에게 닥치는, 자연이 초래하는 몇 안 되는 대재앙의 무서운 재난 가운데 하나다. 자연 지형 자체를 바꿔 놓기 때문에 태풍 피해처럼 사후 복구도 쉽지 않다. 오랜 세월, 인간의 힘으로 이런 악조건을 바꾼다는 것은 상상하기 힘든 일이었다.
산시(섬서)성 위린 서북쪽에서는 '부랑허 여자 치사련'의 희생적인 노력으로 모두가 불가능하다고 여겼던 사막을 초원으로 바꾸는 기적이 일어났다. 치사련의 이야기는 사막화(荒漠化)와 싸워 이긴 인간 승리의 감동적인 드라마다. 사회는 이들을 영웅으로 받들었고, 국가는 위린의 치사련을 전국 부녀 애국주의의 모범으로 격상시켰다.

[베이징=뉴스핌] 최헌규 베이징 특파원 chk@newspim.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