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핵심 요약
beta- 17일 프랑스 전국 집회에 약 55만 명이 참여했다
- 교사 부족과 낡은 교실 항의가 공공서비스 불신으로 번졌다
- 재정난과 세대·계층 간 부담 불공정이 분노를 키웠다
!AI가 자동 생성한 요약으로 정확하지 않을 수 있어요.
[서울=뉴스핌] 최원진 기자= 지난 9월 프랑스 파리 북부 외곽의 한 고등학교에서 시작된 학생들의 요구는 소박했다. 부족한 교사를 채우고 낡은 교실을 고쳐달라는 것이었다. 겨울에는 춥고 여름에는 찜통이 되는 교실, 교사가 없어 비는 수업에 대한 항의였다. 하지만 학교 앞에서 시작된 작은 불만은 한 달여 만에 파리와 리옹, 마르세유 등 전국으로 번졌다. 프랑스 공교육에 누적된 문제가 거리로 터져 나온 것이다.
학교 환경 개선 요구에는 노동조합원과 과거 '노란 조끼' 시위 참가자, 생활고에 지친 시민들까지 가세했다. 지난 17일(현지시간) 프랑스 내무부 추산 약 55만 명이 전국 집회에 참여했다. 다수가 평화적으로 행진했지만 일부의 방화와 약탈이 겹치며 주말 동안 약 2,400명이 체포됐다. 공공서비스 개선 요구로 시작된 시위가 폭력으로 번지면서 사태는 정부의 위기 대응 능력을 시험하는 국면으로 치달았다.

어쩌다 교실을 고쳐달라는 요구가 국가 전체를 흔드는 분노로 번졌을까. 그 배경에는 프랑스를 떠받쳐온 '사회적 계약'에 대한 신뢰의 균열이 있다. 세금을 많이 내는 대신 국가가 교육과 의료, 노후를 책임진다는 믿음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프랑스에서 평균임금을 받는 무자녀 독신 근로자의 소득세와 근로자와 고용주가 내는 사회보험료 등은 총노동비용의 47.2%에 이른다. 근로자 월급의 절반이 세금이라는 뜻은 아니지만, 노동에 수반되는 공적 부담이 상당하다는 점은 분명하다.
문제는 이처럼 막대한 부담을 지고도 이에 걸맞은 공공서비스를 체감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프랑스 교육부에 따르면 2024~2025학년도 공립 중·고교에서 예정된 수업시간의 약 10%가 진행되지 않았다. 가장 큰 원인은 부재 교사를 대체하지 못한 것이었다. 의료 취약지역에서는 의사를 구하기 어렵고, 일부 응급실은 특정 시간대 운영을 중단하거나 이용을 제한하고 있다. 복잡한 온라인 행정절차와 답변 지연도 공공서비스 이용의 장벽으로 지적된다.
세금 부담의 공정성에 대한 의구심은 분노를 더욱 부채질한다. 근로소득에는 누진소득세와 사회보험료 등이 부과되는 반면, 배당과 주식 매매차익 등에는 원칙적으로 소득세와 사회부담금을 합쳐 31.4%의 단일세율이 적용된다. 다만 고소득자에게는 추가 부담금이 붙을 수 있다. 초부유층은 회사 이익을 배당받지 않고 회사 안에 남겨 개인소득세 납부를 미룰 수도 있다. 프랑스 공공정책연구소(IPP)가 2016년 자료를 분석한 연구에서는 기업에 남겨둔 이익까지 소득으로 계산할 때 최상위 부유층의 실효세율이 그보다 아래 고소득층보다 낮아지는 현상이 나타났다.
공공서비스를 확충할 재정 여력마저 바닥났다. 지난해 프랑스의 재정 적자는 국내총생산(GDP) 대비 5.1%, 국가부채는 115%를 넘었다. OECD는 프랑스의 실질 경제성장률을 올해 0.7%, 내년 0.8%로 전망했다. 재정건전성 우려에 정치 불안이 겹쳐 10년물 국채금리가 이달 초 5% 수준까지 올라 2002년 이후 최고치를 기록하자, 정부는 대규모 재정 긴축을 추진 중이다.
연금 부담은 재정 운용을 더욱 어렵게 한다. 정부 보고서에 따르면 교육부 예산의 약 3분의 1, 내무부 예산의 30%가 국가공무원 연금 재원으로 들어간다. 현장 서비스에 쓸 수 있는 재정 여력이 그만큼 제약받는 구조다. 지난 2024년 프랑스의 보건·복지 지출은 GDP의 32.6%로 유로존 평균보다 5%포인트 높았고, 연금 지출만 GDP의 13.4%에 달했다. 하지만 법정 연금 수급 연령을 높이는 연금 개혁은 정치적 반발로 수급 연령 상향 일정이 2028년 1월까지 유예됐다.
고령층을 위한 노후보장을 유지하느라 정작 미래인 청년을 위한 교육 투자는 뒷전으로 밀려난 셈이다. 지금의 교실조차 고쳐주지 못하는 국가를 바라보며 청년들은 미래의 부담을 거부하고 있다. 파리 외곽의 직장인 플로랑 프루농(30) 씨는 노후 대비를 위해 매달 500유로(약 74만 원)씩 개인 투자 계좌에 넣고 있다. 그는 16일 로이터 통신에 "국가 연금 제도가 유지될 수 없다고 확신한다"고 잘라 말했다. 프랑스 여론조사기관 IFOP 조사에서도 25~34세 응답자의 83%가 국가 연금 제도를 불신한다고 밝혔다.
프랑스 사태는 빚으로 개혁을 미루고 표를 의식해 반발을 피하는 정치가 어떤 대가를 치르는지 보여준다. 크리스틴 라가르드 유럽중앙은행(ECB) 총재의 지적처럼 부채 문제의 해법은 결국 프랑스 내부의 재정 개혁에 있다. 고령층의 표심을 살피느라 청년의 교실을 방치하고, 부담의 공정성은 외면한 채 납세자에게 인내만 요구해서는 복지국가를 지탱할 수 없다. 정부가 지켜야 할 것은 특정 세대의 몫이나 당장의 지지율이 아니라, 세대와 계층을 아우르는 사회적 신뢰다.
wonjc6@newspim.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