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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브인수원]⑥ 수원시 명예의 전당에 헌액된 여성 3인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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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향화-1919년3월29일 일제 경찰서 앞 만세시위 주도한 의로운 기생
안점순-위안부 피해자로 일본의 만행을 세계에 알리며 평화운동가로 활동
이선경-구국민단 등 수원지역 독립운동으로19세에 순국한 독립운동가

·[수원=뉴스핌] 순정우 기자 = 지난 3월8일은 1908년 미국 여성 노동자들이 생존권과 참정권을 요구하며 벌인 시위를 기념해 1975년부터 UN이 지정한 '세계 여성의 날'이었다.

경기 수원에도 자랑스러운 역사 속 여성들이 있다. 수원의 명예를 드높인 공적으로 귀감이 된 인물을 선정해 조명하고 있는 '수원시 명예의 전당'에 헌액된 김향화(1897~미상), 안점순(1928~2018), 이선경(1902~1921) 등 세 명이다. 이들이 살아온 삶을 알아봤다.

◆'총칼 앞에서도 의로웠던 기생' 김향화

수원시 명예의 전당 홈페이지에 헌액된 김향화 [사진=수원시]

김향화는 일제 강점기 매서운 총칼 앞에 의롭게 맞선 수원의 기생이었다. 1897년 7월16일 서울에서 태어난 김향화의 본명은 순이다. 생계가 어려워 불과 15~16세 때에 나이 차이가 많은 남편과 결혼했지만, 18세가 되던 해에 이혼했다. 비슷한 시기에 아버지가 돌아가시며 생계가 어려워진 가족들이 수원으로 이주하면서 김향화는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기생이 되었다. 1918년 발행된 '조선미인보감'에서 김향화는 검무와 승무에 능하고 구슬프고 애절하게 노래를 잘한다고 소개됐다.

당시 수원의 기생들은 의기가 높았다. 1월21일 고종황제가 승하하자 27일 20여명의 수원기생들이 상복을 차려입고 서울 대한문 앞으로 가 망곡례를 올린 내용이 매일신보에 기록돼 있을 정도다. 또 자선공연을 통해 발생한 수익금을 수원상업강습소 학생들을 위해 내놓기도 하는 등 높은 민족의식으로 사회적 역할도 수행했다.

특히 1919년 3월 들불처럼 번졌던 수원지역 만세운동 중 김향화를 중심으로 한 수원예기조합 기생들은 일제의 총칼에 용감하게 맞섰다. 3월29일 자혜의원(화성행궁 봉수당)으로 검사를 받으러 가던 30여명의 기생들이 경찰서 앞에서 태극기를 꺼내들고 만세를 외쳤다. 선두에는 김향화가 있었다. 일본 경찰과 수비대가 총칼을 들이대며 무자비하게 진압했고, 이를 지켜보던 사람들이 합세해 시위 규모가 커졌다고 한다. 김향화는 경찰에 잡혀 주모자로 지목됐다.

이후 김향화는 2개월여의 감금과 고문 끝에 징역 6개월 판결을 확정받았다. 만세운동을 주도한 기생 김향화 재판에는 많은 사람들이 방청객으로 참석했을 정도로 관심이 높았다고 한다. 서대문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르다 1919년 10월 가출옥한 김향화는 수원으로 돌아왔다. 이름을 '우순'이라고 바꾸고 지내다가 서울로 이주했다는 것 외에 이후 행적은 알려지지 않았다.

가난으로 기생이 되어야 했지만, 조국의 독립을 위해 만세운동을 주도한 김향화에게 2009년 대통령표창이 추서됐다. 수원시가 공훈을 발굴해 서훈 신청을 이끌었으며, 표창장과 메달은 수원박물관 수원의 독립운동가 코너에 전시해 시민들에게 드높은 의기를 전하고 있다.

◆'고통을 딛고 평화를 만든' 안점순

수원시 명예의 전당 홈페이지에 헌액된 안점순 [사진=수원시]

안점순은 끔찍했던 위안부 피해를 세상에 널리 알리며 수원시민은 물론 세계인들에게 감동을 선사한 평화활동가다.

1928년 12월2일 서울에서 태어난 안점순은 어려운 가정형편 속에서도 효심 깊은 소녀로 자랐다. 안점순은 '방앗간 앞으로 모이라'는 말에 저울에 올라섰던 열네 살, 트럭에 그대로 실려 어머니와 생이별했다. 어딘지도 모를 사막 같은 곳에 끌려가 고통스러운 생활과 짐승보다 못한 취급을 받으며 3년을 버텼다. 전쟁이 끝나자 버려진 안점순은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아 광복군의 도움을 받아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석 달을 앓아 누웠던 안점순은 또다시 전쟁을 겪으며 피난생활을 하는 등 고된 삶을 이어갔다. 결혼은 하지 않았고, 1991년 위안부 문제가 세상에 공개된 뒤 조카가 피해자로 등록만 했을 뿐 얼굴을 드러내지 않고 조용히 지냈다. 그러나 피해자 지원단체 등이 끊임없이 문을 두드린 끝에 할머니가 된 75세 안점순은 세상으로 나와 날갯짓을 시작했다.

일본 대사관 앞 수요시위에 참석하고, UN 인권위원회에 진정서를 제출해 일본의 만행을 알렸다. 국제노동기구 심포지엄에 참여하고, 다른 피해자들과 연대하는 등의 활동을 통해 전쟁의 피해를 낱낱이 밝혔다.

안점순의 활동은 수원지역에서 위안부 할머니를 위한 활동의 밑거름이자 원동력이 됐다.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건립기금 7000여만원을 모아 2014년 시청 맞은편 올림픽공원에 평화비가 세워졌다. 또 이를 계기로 수원평화나비가 창립돼 수원시와 자매도시인 독일 프라이부르크시에 유럽 최초의 평화비를 세우려 했으나 일본의 조직적인 방해로 무산됐다.

안점순과 수원시민의 끈질긴 노력은 2017년 3월 독일 레겐스부르크 인근 네팔 히말라야 파비용 공원에 '순이'라는 이름의 소녀상을 세우는 결실을 맺었다. 89세 노인이 된 안점순은 제막식에 참석해 "험한 세상이 없었으면 좋겠다"는 말을 남겼다. 이후 1년여 만인 2018년 3월30일 고단했지만 아름다운 삶을 마감했다.

수원시는 고통을 딛고 평화운동가로 거듭난 수원의 자랑스러운 여성 안점순을 수원시민사회장으로 배웅하고, 명예의 전당에 수원을 빛낸 인물 중 한 명으로 이름을 올렸다. 또 수원시가족여성회관 내에 '용담 안점순 기억의 방'을 만들어 그의 활동을 기억하고 추모하고 있다.

◆'독립을 위해 불태운 열아홉 열정' 이선경

수원시 명예의 전당 홈페이지에 헌액된 이선경의 학적부 [사진=수원시]

'수원의 유관순'으로 알려진 이선경은 꽃 같은 19세의 나이에 순국한 수원지역 여성 독립운동가다.

이선경은 1902년 5월 수원군 산루리(현 수원시 중동)의 유복한 가정에서 2남2녀 중 차녀로 태어났다. 1918년 수원공립보통학교를 졸업하고 서울 숙명여학교로 진학해 1919년 3월 만세시위에 참여해 구속됐다가 무죄 방면됐다. 특히 수원지역에서 김세환의 시위 계획에 참여한 이선경은 각지의 연락업무를 담당했다고 알려져 있다. 치마폭에 비밀문서를 숨기고 일본 경찰의 눈을 피해 대전, 청주, 안성 등지로 수십차례 비밀지령을 전달했다고 한다. 이후 2학기에는 경성여자고등보통학교로 전학한 뒤 수원에서 서울로 유학하던 여성동지들과 나라의 장래를 위해 자신들이 할 수 있는 일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이선경은 1920년 6월 서호 부근에서 박선태 등과 만나 수원 최초의 비밀결사 '구국민단'을 결성하고, 임원으로 활동했다. 수원에서 기차를 타고 서울로 통학하는 지식인 청년들이 주축이 되어 매주 금요일마다 삼일여학교(현 매향중)에서 만나 독립운동과 임시정부의 활동을 알리는 내용을 수원지역에 배포하는 논의를 했다. 특히 이선경을 비롯한 여학생들은 임시정부의 간호원이 되어 독립운동을 돕겠다는 맹세를 했다. 그러나 두 달여 만에 구국민단의 활동이 발각되면서 이선경도 체포되고 말았다.

이선경은 체포 이후 일제 경찰에 심한 고문을 받은 것으로 추정된다. 1921년 4월까지 140일간 구류됐는데, 이 기간 병을 얻어 재판에 참여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마지막 재판일이었던 1921년 4월12일 궐석재판으로 징역 1년,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아 방면된 이선경은 수원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고향으로 돌아온 지 9일 만인 4월21일 순국했다. 병원에 가지 못할 정도로 병세가 심각했다고 한다.

이선경은 심문과정에서도 독립을 향한 의지를 꺾지 않았다. 석방된다면 다시 이 운동을 벌일 생각인지 묻는 일제에 "석방되어도 다시 나라의 독립을 위해 싸우겠소"라고 답한 기록이 남아 있다. 이선경은 순국 91년 만인 지난 2012년 3월1일 건국포장 애국장에 추서됐다. 수원시는 명예의 전당에 그 자랑스러운 수원의 여성 이선경을 헌액해 기억하고 있다.

jungwoo@newspi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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긍정 영향 종목

  • Lockheed Martin Corp. Industrials
    우크라이나 안보 지원 강화 기대감으로 방산 수요 증가 직접적. 미·러 긴장 완화 불확실성 속에서도 방위산업 매출 안정성 강화 예상됨.

부정 영향 종목

  • Caterpillar Inc. Industrials
    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 시 건설 및 중장비 수요 불확실성 직접적. 글로벌 인프라 투자 지연으로 매출 성장 둔화 가능성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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