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기사 최신뉴스 GAM
KYD 디데이
문화·연예 문화·연예일반

속보

더보기

[이철환의 예술가 이야기] 타히티 섬에서 원시를 그린 화가, 폴 고갱

기사입력 :

최종수정 :

※ 본문 글자 크기 조정

  • 더 작게
  • 작게
  • 보통
  • 크게
  • 더 크게

※ 번역할 언어 선택

예술에 살고 사랑에 살고(30)

지금까지 미술 작품 공개경매 역사상 가장 비싸게 팔린 작품은 무엇일까? 지난 2015년 5월 11일, 미국 뉴욕 크리스티 경매장에서 현대 미술품 경매의 새로운 역사가 만들어졌다. 파블로 피카소의 유화 《알제의 여인들》이 1억 7,936만 달러에 낙찰돼 미술품 경매 최고가 기록을 경신한 것이다. 그 이전의 최고 경매가 작품은 2013년 1억 4,240만 달러에 낙찰된 영국 화가 프랜시스 베이컨의 《루치안 프로이트의 세 가지 연구》였다.
그러나 공개경매와 개인거래를 통틀어 회화 거래 역사상 가장 비싸게 팔린 그림은 이들이 아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프랑스 후기인상주의 화가였던 폴 고갱의 1892년 작품 《언제 결혼하니?》이다. 지난 2015년 2월, 스위스 바젤에서 진행됐던 비공개 경매에서 이 작품은 무려 3억 달러에 중동의 왕족에게 팔린 것으로 알려졌다. 그 이전의 비공개 경매 최고가 기록은 2011년 4월, 2억 6,000만 달러에 팔린 것으로 알려진 폴 세잔의 《카드놀이 하는 사람들》이었다.
이 작품은 고갱이 타히티에서 생활하면서 그린 초기작에 해당된다. 작품에는 검게 그을린 피부의 두 여인이 화면 가득 위치하고 있으며, 배경에는 타히티의 풍경이 묘사되어 있다. 녹색 들판과 여인들의 붉은 옷, 그리고 배경의 푸른색 등의 강렬한 색상들은 작품의 단순한 형태들과 어우러져 화면을 장식하고 있다.

‘언제 결혼하니?’, 유화 캔버스에 유채, 77 Ⅹ 101 cm / 바젤 미술관 <사진=이철환>

일반적으로 고갱 그림의 특징은 뚜렷한 윤곽선과 단순화한 형태, 음영이 없어서 평평한 느낌을 주는 바탕, 실제 대상의 색과는 다른 강렬한 색채라 할 것이다. 그는 자연의 실제 모습을 그대로 그리지 않고, 자신의 경험과 상상을 자신의 그림 속으로 녹여냈다. 이처럼 그림을 통해 자신의 감정과 내면을 드러낸다는 점에서 그의 작품은 후대의 표현주의 미술에 큰 영향을 미쳤다. 또한 문명을 혐오하고 원시와 자연을 예찬했다는 특징도 있다.

폴 고갱의 또 다른 대작으로는 《우리는 어디서 왔는가? 우리는 무엇인가?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 (Where Do We Come From? What Are We? Where Are We Going?)》가 있다. 이 작품은 고갱이 가장 힘들었던 시기이던 1897년에 그려진 것으로 인간 존재의 근원에 대한 물음을 던지고 있다. 건강 악화와 빈곤, 딸의 죽음으로 자살을 시도하기까지 했던 고갱은 이 작품을 한 달 정도의 짧은 기간에 완성하였다. 제목은 자신이 직접 붙였으며 습작 데생을 거치지 않고 직접 캔버스에 작업하였다. 고갱의 작품 중에서 가장 큰 규모의 작품이며, 스스로 이 작품을 자신이 그린 모든 작품을 능가하는 역작이라고 말했다.
그림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이동하면서 누워 있는 어린 아기를 통해 우리의 과거를 묻게 되고, 그림 중앙에 서서 익은 과일을 따는 젊은이를 통해 우리의 현재를 보게 된다. 또 화면 왼쪽 아래 웅크리고 귀를 막아 닥쳐올 고통을 괴로워하는 늙은 여인의 모습에서는 우리의 미래를 어렴풋이 느낄 수 있다. 즉, 인간의 탄생, 삶 그리고 죽음의 3단계를 표현한 것이다
그림 왼쪽 윗부분에는 타히티에 전해 내려오는 전설 속 여신의 상이 있고, 여신 곁에는 자신의 원주민 아내 파우라와의 사이에서 탄생했으나 얼마 후 죽은 딸아이가 그려져 있다. 분신처럼 아끼던 딸아이를 여신의 힘을 빌려 되살리고자 한 것이다.

폴 고갱 (Paul Gauguin, 1848~1903)은 1848년 프랑스 파리에서 출생하였다. 그의 아버지는 프랑스혁명의 정치적 혼란기를 피하려고 고갱이 태어나자 페루의 수도인 리마로 이주할 결심을 한다. 하지만 페루로 가는 여객선 안에서 그의 아버지는 심장병으로 사망한다. 폴 고갱의 어린 시절은 이렇게 페루 리마에서 불행하게 시작되었다.
1854년 고갱의 가족은 다시 프랑스로 돌아와 오를레앙에 정착하게 된다. 프랑스로 돌아와서도 그의 가족은 여전히 가난하였다. 삯바느질로 생계를 꾸리던 어머니를 돕기 위해 고갱은 배를 타는 선원생활을 하게 된다. 그러다 1872년 선원생활을 그만두고 파리로 돌아와 증권거래 사무실에 일자리를 얻는다.
1873년에는 덴마크 여성인 메테 소피 가트와 결혼하면서 경제적으로도 윤택해지게 된다. 5명의 아이도 생겼다. 이 무렵부터 고갱은 회화에 흥미를 가지기 시작하여 특히 인상파의 작품을 수집하고 있었다. 그리고 때때로 직접 그림을 그리기도 하였다.
1882년 어느 날, 그는 증권사 직원을 그만두고 화가가 되기로 마음먹는다. 나이를 먹을 만큼 먹은 35세에 전업화가가 되려는 그를 가족은 물론이고 평소에 알고 지내던 화가들도 크게 놀라며 반대했다. 그러나 그는 가족들과 주변의 반대를 무릅쓰고 화가의 길로 들어섰다. 그 후 돈벌이가 없어 생활이 어려워지자 아내와의 사이도 나빠졌다. 결국 타히티로 떠나기 직전인 1891년부터 죽을 때까지 그는 가족들을 다시 만나지 못했다.
이후 파리에서 고갱은 자신의 인생에서 중요한 인연이라 할 수 있는 두 사람을 만나게 된다. 다름 아닌 신인 화가 빈센트 반 고흐와 그의 동생이며 화상인 테오 반 고흐였다. 고갱은 고흐의 초청으로 남부 프랑스 아를에 있는 ‘노란 집’, 즉 고흐의 집에서 9주일 동안 그와 함께 지내며 작업했다. 그러나 두 사람은 성격과 예술관의 차이 때문에 불화가 심해졌고, 결국 고흐가 자기 귀를 자르는 자해 사건이 일어나자 고갱은 노란 집을 떠나게 된다.

한편, 1889년의 파리 만국박람회에 출품된 아시아와 남태평양의 이국적인 풍물을 접하고서 그는 원시적인 생활을 동경하게 된다. 마침내 그는 1891년 2월 남태평양의 타히티섬으로 떠났다. 하지만 그는 이국 생활에 쉽게 적응하지 못했다. 타히티는 작품의 소재를 얻을 곳, 영감과 쾌락을 제공할 곳이었지 결코 그가 평생 거주하다가 뼈를 묻을 곳은 아니었다. 몇 달이 지나자 그는 고독과 향수를 느낀다. 돈도 떨어진 지 오래였다. 결국 그는 고국 프랑스로 돌아가기로 작정하고 1893년 6월 다시 배에 오른다. 약 2년 동안 타히티에 머무르는 동안 그는 독특하고 과감한 색채가 돋보이는 60여점의 회화와 조각 작품을 만들었다.
파리로 돌아온 이후에도 경제적 어려움은 여전했다. 반 고흐 형제를 비롯해 그의 친구와 후원자들이 상당수 사망했고, 미술계의 유행도 이미 바뀌어 있었다. 개인전을 열어 타히티 시절의 작품을 선보였지만 반응은 미지근했다. 이후 흑인 혼혈 여성 안나 라 자바네즈를 모델 겸 애인으로 삼아 새로이 창작욕을 불태웠다. 그러나 우발적인 폭력 사건에 휘말리면서 둘의 관계는 끝나버린다.
사실 고갱의 여자관계는 상당히 복잡한 편이었다. 죽음의 원인도 성병인 매독이었다. 그는 파리에 있을 때도 그랬지만 타히티에서도 몇 차례 원주민 여성과 결혼과 동거를 거듭했다. 개중에는 13세의 미성년자 소녀도 있었다. 타히티 원주민 소녀 파우라는 열네 살이던 1896년부터 고갱과 동거 생활을 시작했고 이듬해 고갱의 딸을 낳았다. 그러나 아이는 태어난 지 몇 주 후에 죽고 만다.

연이은 좌절을 겪은 고갱은 프랑스를 영원히 뜨기로 작정한다. 다시 타히티로 가려는 것이었다. 떠나기 직전 고갱은 자신이 타히티로 가는 이유를 이렇게 말했다. “이 목가적인 섬과 원초적이며 순박한 주민에게 매료당했기 때문이지요. 고향으로 돌아왔다가 다시 떠나려는 이유도 그 때문입니다. 새로운 것을 이루려면 근원으로, 어린 시절로 돌아가야 해요. 나의 이브는 동물에 가깝습니다. 벌거벗었는데도 음란해 보이지 않는 것은 그래서예요. 그리고 떠나기 전 타히티 생활을 소개한 책을 펴낼 생각입니다. 그 책의 제목은 ‘노아노아(Noa Noa)’, 타히티 말로 ‘향기로운’ 이라는 뜻이지요.”
1895년 6월에 파리를 떠난 고갱은 9월 초에 다시 타히티의 파페에테에 도착한다. 하지만 폭력사고로 입은 골절상의 후유증에다 젊은 시절 얻은 성병이 재발하여 그의 몸은 이미 크게 망가져 있었다. 고갱은 우울증에 시달리고 심지어 자살까지도 시도하지만, 그 와중에서도 붓을 놓지는 않았다. 이 시기의 주요 작품으로는 타히티 원주민 여인들을 모델로 한 여러 점의 작품과 최후의 대작인 《우리는 어디서 왔는가? 우리는 무엇인가?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가 있다.
1901년, 고갱은 타히티를 떠나 거기보다도 상대적으로 덜 문명화된 마르키즈 제도의 히바오아(Hiva Oa) 섬으로 거처를 옮긴다. 그러나 거기서 백인 관료와 선교사의 전횡을 목도하고 이를 고발하여 법정 다툼을 벌이다 패소하고 만다. 이후 건강 악화로 한 달 넘게 병상에 누워 있던 고갱은 1903년 5월 8일, 히바오아에서 숨을 거두었다. 지금도 그의 무덤은 그곳에 있다.

고갱이 사망한 지 1년 뒤인 1904년, 파리에 온 어느 젊은 영국인 작가는 얼마 전까지 타히티에서 살다가 사망한 프랑스인 화가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호기심을 느낀다. 그의 일생이 흥미로운 소재라고 생각한 이 영국인은 13년 뒤인 1917년에 타히티를 직접 방문해 고갱의 흔적을 찾아다닌다.
이 작가는 바로 윌리엄 서머셋 모옴(William Somerset Maugham)이었다. 서머셋 모움은 고갱의 생을 기본소재로 삼아 소설 《달과 6펜스 (The Moon and Sixpence, 1921)》를 발표하여 큰 성공을 거두게 된다. 그리고 생전에 이름 없는 화가로 살았던 고갱을 세상에 알리는 데 커다란 역할을 하였다.

이철환 객원 편집위원 mofelee@hanmail.net (전 재정경제부 금융정보분석원장, 전 한국거래소 시장감시위원장. 문화와 경제의 행복한 만남 등 다수의 저서가 있다.)

[관련키워드]

[뉴스핌 베스트 기사]

사진
李대통령 지지율 10주만에 반등 [리얼미터] [서울=뉴스핌] 박찬제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의 국정 지지율이 10주 만에 소폭 반등해 34.8%를 기록했다는 여론조사 결과가 21일 나왔다.  리얼미터가 에너지경제신문 의뢰로 지난 14~18일 전국 18세 이상 유권자 2507명을 대상으로 실시해 이날 공개한 조사에 따르면, 이 대통령의 국정수행 긍정 평가는 전주보다 1.0%포인트(p) 오른 34.8%였다. 부정 평가는 0.1%p 오른 63.4%였다. 긍정·부정 평가 격차는 28.6%p로 오차범위 밖이었고, '잘 모름'은 1.8%였다. 이재명 대통령이 18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취임 후 7번째 기자회견을 진행하고 있다. 2026.09.18 [사진=청와대] 이 대통령 지지율을 권역별로 살펴보면, 가장 큰 상승폭을 보인 곳은 3.9%p오른 대전·세종·충청이었다. 부산·울산·경남은 3.2%p, 인천·경기는 2.2%p 올랐다. 다만 전남·광주·전북에서 4.1%p 하락했다. 연령대별로는 20대에서 5.4%p, 60대 2.9%p, 30대 2.8%p 순으로 올랐다. 40대는 2.3%p, 50대는 1.9%p 떨어졌다. 리얼미터는 "주 초에는 인사 검증 논란과 청문회 여파로 지지율 하락세가 이어졌다"며 "주 후반 대국민 기자회견을 통해 연임·공소 취소·파병 등 주요 정국 현안에 대한 입장을 밝히고 국정 쇄신 의지를 강조하면서 지지율이 상승세로 전환된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실제로 이 대통령 지지율 일간 흐름을 보면 지난 11일 32.6%였던 긍정 평가는 15일 32.9%로 소폭 상승했다. 당시는 성기홍 청와대 홍보소통수석이 이 대통령의 기자회견을 언론을 통해 예고한 날이기도 하다. 이후 이 대통령의 지지율은 지난 16일 32.1%로 떨어졌고, 기자회견 전날인 17일 35.3%, 기자회견 당일인 18일 37.2%로 올랐다. 지난 17~18일 전국 18세 이상 유권자 1003명을 대상으로 한 정당 지지도 조사에서는 더불어민주당이 40.2%, 국민의힘이 38.5%를 기록했다. 민주당은 전주보다 4.1%p 상승했고 국민의힘은 3.6%p 하락했다. 조국혁신당은 5.2%, 개혁신당은 1.9%, 진보당은 0.9%였다. 기타 정당은 2.4%, 무당층은 11.0%로 나타났다. 리얼미터는 민주당에 대해 "이 대통령의 기자회견을 통해 국정 현안에 대한 입장과 정책 메시지가 부각되면서 수도권과 청년층의 지지 결집으로 이어져 지지율 상승에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고 진단했다. 리얼미터는 국민의힘에 대해 "인사청문회를 둘러싼 여야 대치 과정에서 장외투쟁과 탄핵 언급 등 강경 대응을 이어갔다"면서 "그러나 이러한 대응이 지지층 결집으로 이어지지 못한 가운데 20·30대 청년층과 중도·보수층의 지지 이탈이 나타나면서 지지율이 하락한 것으로 보인다"고 해석했다. 두 조사는 모두 무선(100%) 자동응답 방식으로 진행됐다. 대통령 국정수행 평가 조사의 응답률은 4.1%,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서 ±2.0%p다. 정당 지지도 조사의 응답률은 3.5%,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서 ±3.1%p다.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를 참조하면 된다. pcjay@newspim.com 2026-09-21 08:41
사진
한국 男농구, 일본 꺾고 금메달 [서울=뉴스핌] 남정훈 기자 = 아시안게임 남자농구 결승에서 처음 성사된 한일전의 승자는 대한민국이었다. 한국이 개최국 일본을 적지에서 꺾고 12년 만에 아시아 정상에 복귀했다. 니콜라이스 마줄스 감독이 이끄는 한국 남자농구대표팀은 20일 일본 나고야 아이치 인터내셔널 아레나에서 열린 2026 아이치·나고야 아시안게임 남자농구 결승에서 일본을 67-57로 제압했다. [나고야 로이터=뉴스핌] 한국 남자농구대표팀이 20일 일본 나고야 아이치 인터내셔널 아레나에서 열린 2026 아이치·나고야 아시안게임 남자농구 결승에서 일본을 67-57로 제압했다. 2026.09.20 wcn05002@newspim.com 한국은 2014 인천 대회 이후 12년 만이자 1970 방콕, 1982 뉴델리, 2002 부산, 2014 인천에 이어 통산 5번째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특히 2002 부산과 2014 인천에 이어 2026년 다시 우승하면서 최근 세 차례 정상 등극이 정확히 12년 간격으로 이어졌다. 이번 대회 일본과의 두 차례 맞대결도 모두 승리로 장식했다. 한국은 지난 13일 조별리그에서 일본을 100-83으로 완파한 데 이어 결승에서도 다시 개최국을 무너뜨렸다. 우승의 중심에는 이현중이 있었다. 이현중은 3점슛 5개를 포함해 27점 18리바운드 3어시스트 2스틸을 기록하며 결승 무대를 지배했다. 이정현도 14점 7어시스트로 힘을 보탰다. 출발은 쉽지 않았다. 한국은 이정현과 이현중을 앞세워 초반 11-5로 앞섰지만 이후 공격이 흔들리면서 일본에 흐름을 내줬고 1쿼터를 12-16으로 마쳤다. [나고야 로이터=뉴스핌] 한국 남자농구대표팀이 20일 일본 나고야 아이치 인터내셔널 아레나에서 열린 2026 아이치·나고야 아시안게임 남자농구 결승에서 일본을 67-57로 제압했다. 2026.09.20 wcn05002@newspim.com 2쿼터부터 반격했다. 최준용의 3점슛으로 공격의 물꼬를 텄고 이정현의 돌파와 이승현, 최준용의 앨리웁 플레이 등을 앞세워 추격했다. 변준형의 레이업까지 나오면서 한국은 전반을 28-28 동점으로 마쳤다. 승부처는 3쿼터였다. 전반 5점에 묶였던 이현중이 본격적으로 폭발했다. 스틸에 이은 속공 득점으로 기세를 올린 이현중은 일본 오가와 아쓰야에게 연속 3점슛을 허용해 38-39로 역전당하자 곧바로 외곽포로 응수했다. 이어 다시 3점슛을 꽂아 44-39를 만들며 분위기를 완전히 가져왔다. 한국은 이정현과 이우석의 외곽포, 장재석의 훅슛까지 더해 3쿼터를 55-47로 마쳤다. 마지막 10분도 한국의 시간이었다. 강한 수비로 4쿼터 초반 일본의 득점을 묶은 사이 이현중과 이정현이 착실하게 점수를 쌓았다. 한때 62-49, 13점 차까지 달아났다. 이현중은 종료 3분여를 남기고 공격 리바운드에 이은 득점까지 성공시키며 일본의 추격 의지를 꺾었다. [나고야 로이터=뉴스핌] 한국 남자농구대표팀이 20일 일본 나고야 아이치 인터내셔널 아레나에서 열린 2026 아이치·나고야 아시안게임 남자농구 결승에서 일본을 67-57로 제압했다. 2026.09.20 wcn05002@newspim.com 한국은 경기 전 예상치 못한 변수도 이겨냈다. 결승 당일 오전 별도 체육관에서 훈련할 예정이었지만 조직위원회가 배정한 버스가 숙소에 오지 않아 훈련 자체가 취소됐다. 계획에 차질이 생겼지만 선수들은 흔들리지 않았고 결국 코트에서 승리로 답했다. 64년 만에 아시안게임 남자농구 결승에 오른 일본은 안방에서 첫 우승에 도전했지만 한국의 벽을 넘지 못했다. 한국은 조별리그부터 결승까지 무패 행진으로 대회를 마무리했다. 그리고 부산에서 인천, 다시 나고야까지 12년마다 이어진 금빛 역사를 완성했다. wcn05002@newspim.com 2026-09-20 21:40
기사 번역
결과물 출력을 준비하고 있어요.
종목 추적기

S&P 500 기업 중 기사 내용이 영향을 줄 종목 추적

결과물 출력을 준비하고 있어요.

긍정 영향 종목

  • Lockheed Martin Corp. Industrials
    우크라이나 안보 지원 강화 기대감으로 방산 수요 증가 직접적. 미·러 긴장 완화 불확실성 속에서도 방위산업 매출 안정성 강화 예상됨.

부정 영향 종목

  • Caterpillar Inc. Industrials
    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 시 건설 및 중장비 수요 불확실성 직접적. 글로벌 인프라 투자 지연으로 매출 성장 둔화 가능성 있음.
이 내용에 포함된 데이터와 의견은 뉴스핌 AI가 분석한 결과입니다. 정보 제공 목적으로만 작성되었으며, 특정 종목 매매를 권유하지 않습니다. 투자 판단 및 결과에 대한 책임은 투자자 본인에게 있습니다. 주식 투자는 원금 손실 가능성이 있으므로, 투자 전 충분한 조사와 전문가 상담을 권장합니다.
안다쇼핑
Top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