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기사 최신뉴스 GAM
KYD 디데이
문화·연예 문화·연예일반

[이철환의 예술가 이야기]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의 비밀, 요하네스 페르메이르

기사입력 : 2017년11월24일 13:55

최종수정 : 2017년11월24일 13:55

※ 본문 글자 크기 조정

  • 더 작게
  • 작게
  • 보통
  • 크게
  • 더 크게

※ 번역할 언어 선택

예술에 살고 사랑에 살고(27)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 (Girl with a Pearl Earring)》는 매우 신비스러운 느낌을 주는 그림이다. 네덜란드 화가 요하네스 페르메이르의 작품인 이 그림이 세상에 알려진 것은 그리 오래 되지 않지만, 알려진 이후에는 세계인의 사랑을 받고 있다. 네덜란드 헤이그의 마우리츠호이스 왕립미술관에 전시되어 있는 이 그림 앞에는 늘 관람객이 줄을 서지만, 그중에서도 일본인들이 가장 많이 찾는다고 한다.

머리에 터번을 두른 그림 속의 소녀는 묘한 눈빛과 신비스러운 표정으로 누군가를 쳐다보기 위해서 왼쪽 어깨를 틀어 고개를 돌리고 있다. 왼쪽 귀에 걸린 진주가 하얀 옷깃에 반사된 듯 맑고 투명하게 빛난다. 커다란 눈동자와 살짝 벌어진 입술, 무언가를 동경하는 듯한 표정을 지닌 이 아름다운 소녀는 보는 이들에게 비밀스러움이 깃들인 신비감을 주고 있다. 그래서 이 그림은 ‘북유럽의 모나리자’, 또는 ‘네덜란드의 모나리자’라고도 불린다.
그림 속의 소녀가 누구인지 모른다는 점, 그리고 이 그림이 지닌 비밀스럽고 신비스러운 분위기로 인해 사람들에게 많은 상상력을 불러 일으켰다. 그 결과 이 그림을 소재로 한 소설과 영화가 잇달아 만들어졌다. 이후 그림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은 한층 더 커지게 된다. 다음은 스칼렛 요한슨과 콜린 퍼스를 주연으로 2003년 제작된 같은 이름의 영화 줄거리이다.

“그리트(스칼렛 요한슨 분)는 1660년대 네덜란드에 살고 있는 16세 소녀이다. 집안이 어려워지자 그리트는 화가 요하네스 페르메이르(콜린 퍼스 분)의 집에 하녀로 들어간다.
주인과 하녀의 위치에서 대화를 나누는 가운데 페르메이르와 그리트는 서로를 조금씩 알아가게 된다. 페르메이르는 그리트가 그림에 관심이 많고 색채에 대한 이해가 높으며 예술적인 소양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페르메이르는 그리트가 물감을 섞거나 그림 작업을 돕도록 가르친다. 자연히 둘만의 시간이 많아지게 되었다. 그러나 페르메이르는 시기심 많은 아내 카타리나가 이러한 사실을 알지 못하도록 비밀스러운 일상을 이어간다.

그러던 어느 날 그리트는 페르메이르의 후원자인 반 라이벤에게 심부름을 가게 된다. 청순한 그리트에게 음흉한 생각을 품게 된 라이벤은 페르메이르에게 그녀의 초상화를 그릴 것을 종용한다. 페르메이르는 후원자의 종용에 더하여 아름다운 그리트를 화폭에 옮기고 싶다는 마음에서 이를 승낙한다. 페르메이르의 초상화 작업은 가족들은 모르게 비밀스럽게 진행되었다. 그러는 동안 두 사람 사이는 더욱 가까워진다. 그 와중에 반 라이벤은 그녀에게 정욕을 느끼고 겁탈하려고 하지만 그리트는 저항한다.

초상화 바탕작업이 끝나갈 무렵, 페르메이르는 그림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그리트의 한쪽 귓불을 뚫고 아내의 진주 귀걸이를 걸어준다. 이를 우연히 엿보게 된 페르메이르의 딸아이가 엄마인 카타리나에게 사실을 부풀려 고자질한다. 그래서 카타리나는 페르메이르가 하녀 그리트를 모델로 비밀스레 초상화를 그리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더욱이 그리트가 자신의 귀걸이를 걸고 모델이 되었다는 사실도 알았다.
카타리나는 완성된 초상화를 보고 분노하였다. 페르메이르는 자신을 이해하지 못하는 아내를 책망하였다. 그러나 카타리나는 결국 그리트를 집에서 쫓아낸다. 집을 나가기 전, 그리트는 페르메이르를 몰래 지켜보다가 집을 떠난다. 얼마 후 그리트에게 소포 꾸러미가 하나 배달된다. 그 안에는 그녀가 잠시 걸었던 그 진주 귀걸이가 들어 있었다.”

‘진주귀걸이를 한 소녀’, 캔버스에 유채, 44.5x39cm <사진=네덜란드 마우리츠호이스 왕립미술관>

영화는 트레이시 슈발리에(Tracy Chevalier)의 소설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것으로, 사실에 기반을 두었다기보다 그림의 이미지를 최대한 살린 상상 속의 이야기이다. 이처럼 그림과 소설, 영화를 통해 그림 자체에 대한 세상의 반응은 뜨겁지만, 정작 그림을 그린 작가 페르메이르에 대해서는 알려진 게 많지 않다.
페르메이르는 남긴 작품 수가 40점이 채 되지 않는데다가 미술작가들이라면 으레 한 점 이상 그리는 자화상조차 하나 없다. 일기나 편지 등도 발견되지 않았다. 심지어 이름조차도 2가지 다른 설이 있다. 하나는 요하네스(Johannes Vermeer)이고, 다른 하나는 얀(Jan Vermeer)이다. 이처럼 그는 꽤 오랜 세월 동안 존재감이 거의 없는 사람이었다. 그러다 19세기에 이르러서야 그의 존재가 평론가들에 의해 재발견되기 시작했다. 이후 평론가들의 오랜 연구 끝에 그에 관한 사실들이 조금씩 밝혀지게 되었다.

요하네스 페르메이르((Johannes Vermeer, 1632~1675)는 1632년 네덜란드의 델프트에서 출생하였다. 원래 견직공으로 일하다가 그 후 여관을 운영하면서 부업삼아 계속 견직공 일도 이어 나갔다. 화가로서는 카렐 파브리티우스의 영향을 받았는데, 두 사람 사이가 사제관계였는지는 분명치 않다. 1653년 델프트의 화가조합에 등록한 그는 같은 해 카타리나 포르네스와 결혼하였다. 이들은 무려 11명의 아이를 낳았다. 페르메이르는 생계를 꾸려나가기 위해 화가뿐만이 아니라 화상(畵商)으로서도 활동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로 인해 그의 삶에는 시련이 계속 이어졌다고 한다.
화가로서의 입지는 그가 태어나고 살았던 고향 델프트 밖에서는 거의 무명이었다. 그가 남긴 작품 수가 채 40점이 되지 않을 정도로 적은 이유는 확실하지 않다. 43세 젊은 나이에 병으로 죽었으니 몸이 약했을 수도 있고, 작품의 치밀함으로 보아 한 점을 완성하는 데 상당한 시간이 걸렸을 수도 있었을 것이라고 추측할 뿐이다.

페르메이르의 그림은 색조(色調)가 아주 뛰어나다. 적색· 청색· 황색의 절묘한 대비로 그린 실내 정경은 마치 북구의 어느 맑은 날 새벽 공기를 생각나게 한다. 맑고 부드러운 빛과 색깔의 조화로 조용한 정취와 세밀함이 넘친다. 초기에는 밝은 부분과 어두운 부분이 뚜렷한 대비를 이루는데 만년에 갈수록 이 런 경향이 엷어진다.
페르메이르가 남긴 작품들은 거의 소품들로 평범한 일상사 속의 여인들을 그린 것이 대부분이다. 그의 대표작인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 외에도 《편지를 읽는 여성》, 《우유 따르는 하녀》, 《터번을 쓴 소녀》, 《레이스를 뜨는 여인》 등이 이런 부류들이다. 불과 2점이지만 풍경화도 있는데, 헤이그국립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는 《델프트 풍경》은 명작으로 인정받고 있다. 그 밖에 종교를 소재로 한 작품도 있다.

페르메이르의 작품이라고 알려진 것들 중에는 위작(僞作)이 다수 있다. 그의 생애가 세상에 잘 알려지지 않았다는 점을 교묘히 이용해서 위작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연합군은 나치가 약탈해둔 예술품들을 발견하게 된다. 나치 고위간부였던 괴링의 컬렉션도 발견되었는데, 그중에는 그동안 세상에 알려지지 않았던 페르메이르의 작품도 있었다.
《간음한 여인과 그리스도(Christ with the Adultress)》란 작품도 그 중 하나였다. 미술전문가들은 페르메이르의 신작이 발견된 사실에 크게 흥분하였다.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는 이 작품이 어떻게 괴링의 손에 넘어가게 되었는지를 조사하게 된다. 조사 결과 한 판 메이헤른(Han van Meegeren)이라는 무명 미술가의 소행으로 밝혀졌다. 결국 메이헤른은 국보급 미술품을 나치에게 팔아넘긴 혐의와 나치에 협력한 죄로 체포되었다. 그 죄가 위중하여 자칫 사형을 받을 수도 있었다.
조사를 받게 된 메이헤른은 문제의 그림들은 진짜 페르메이르의 작품이 아니라 자신이 만든 가짜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아무도 그의 말을 믿지 않았다. 경찰은 메이헤른에게 자신의 말을 입증하려면 직접 위작을 만들어 보라고 요구하기에 이르게 된다. 결국 메이헤른은 3개월간 가택 연금을 당한 채로 경찰의 감시 아래 《신전에서 설교하는 젊은 예수(Young Jesus preaching in the Temple)》이라는 마지막 위작을 만들었다.
이후 위작 여부를 조사하기 위한 위원회까지 꾸려졌다. 조사 결과, 페르메이르가 살던 17세기에는 쓰이지 않았던 코발트블루가 위작에서 발견되었다. 이것으로 메이헤른의 그림은 모두 위작임이 증명되었다. 결국 메이헤른은 나치에게 국보급 미술품을 팔아넘긴 매국노가 아니라, 나치까지 속여 넘긴 사기꾼이 된 셈이었다.
사실 메이헤른은 다수의 페르메이르 위작을 만들었다. 처음 그가 위작을 만들었을 때는 예술비평가들을 골탕 먹이겠다는 생각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위작이 예상외로 고가에 팔리게 되자 나중에는 돈벌이 목적으로 위작을 만들어냈다. 그런데 당시는 제2차 세계대전으로 세상이 어수선했던 때라, 아무도 판 메이헤른이 만들어낸 가짜 그림에 의심을 하지 않았던 것이다.

페르메이르는 비슷한 시기에 활약한 렘브란트와는 정반대의 삶을 살았다. 렘브란트는 페르메이르보다 한 세대 위인데다 차원이 다른 존재였다. 그는 강렬한 빛과 명암의 마술로 인간의 심연을 통찰하는 대 미술가로 평가를 받고 있었다. 반면 페르메이르는 아무런 존재감이 없었다. 그리고 그는 렘브란트가 세상을 떠난 후 불과 6년 만에 43세로 요절한다. 이처럼 두 사람은 자신들이 살았던 시대에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화가로서의 존재감이 달랐다. 그렇지만, 지금에 와서 이 두 사람은 17세기 네덜란드를 대표하는 화가로서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다.

이철환 객원 편집위원 mofelee@hanmail.net (전 재정경제부 금융정보분석원장, 전 한국거래소 시장감시위원장. 문화와 경제의 행복한 만남 등 다수의 저서가 있다.)

[뉴스핌 베스트 기사]

사진
[변상문의 화랑담배] 제2회 광복군 변상문의 '화랑담배'는 6·25전쟁 이야기이다. 6·25전쟁 때 희생된 모든 분에게 감사드리고, 그 위대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제목을 '화랑담배'로 정했다.  1940년 9월 17일 중국 중경 가릉호텔에서 성대한 행사가 열렸다. 대한민국 임시정부 광복군 창설식이었다. 미국 한인 동포들이 보내온 돈 4만원으로 조직한 군대였다. 지금 돈으로 환산하면 20억 원 정도 된다. 총사령관 이청천 장군, 참모장 이범석 장군, 제1지대장 이준식, 제2지대장 고운기, 제3지대장 김학규, 제5지대장에 나월환을 임명했다. 지대장은 지금의 사단장에 해당한다. 모두 봉오동 전투, 청산리 전투를 비롯하여 남북 만주에서 전개된 항일무장투쟁에 직접 참여하여 활동한 독립군 출신이었다. 한국광복군 훈련반 제1기 졸업사진. [사진= 독립기념관] 임시정부 주석 김구는 포고문을 통해 "국내외 동포들에게 알립니다. 1940년 9월 17일부로 대한민국 광복군을 창설하였습니다. 광복군은 1907년 8월 1일 일제가 대한제국 군대를 해산한 날이 바로 광복군 창설일임을 선언합니다. 광복군은 구 한국군의 후신으로 33년간에 걸친 의병과 독립군의 항일무장투쟁을 계승한 전통 무장 조직입니다"라고 했다. 대한제국 국군-의병-독립군의 군맥(軍脈)과 군혼(軍魂)을 분명하게 잇고 있음을 천명한 것이다. 부대 편성은 소대, 중대, 대대, 연대, 여단, 사단 6단으로 편성하였다. 총 3개 사단을 조직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인원이 적은 상황에서 우선 지대를 만들고, 각 지대를 구대와 분대로 연계한 전투부대를 구성했다. 임시정부에서 1940년 9월 19일 중국 국민당 정부에 통보한 '한국광복군 총사령부 직원 명단'에 의하면, 부대 규모가 총사령부와 4개 단위부대, 여기에다 조선혁명군 부대까지 포함하여 5000여 명이었다. 임시정부에서는 1941년 12월 연합국의 일원으로 일본에 선전포고했다. 1942년에는 미국 측에 "미국이 제주도를 해방 시켜 주면, 중경에 있는 임시정부를 제주도로 옮긴 후, 광복군이 미군과 함께 한반도 상륙작전을 전개하겠다."라고 제안하였다. 이 제안은 실제로 미국 OSS 부대(지금의 CIA)와 1945년 4월부터 8월까지 강도 높은 국내 진공 작전을 준비했다. 주요 훈련은 3개월 기간에 고공낙하, 암살법(권총에 특수장치를 하여 소리 없이 암살하는 방법), 통신(암호의 작성 및 해독법, 무전기 조작 및 수리), 교란 행동, 정보수집, 폭파 등 이었다. 일과는 07:00∼12:00 오전 훈련, 13:00∼18:00 오후 훈련, 19:00∼22:00 야간 훈련이었다. 주요 임무는 대한민국으로 낙하산과 잠수함으로 침투하여 미 공군 공습에 필요한 지형 등의 정보를 제공하고 일본군 군사시설 탐지 및 파괴 지하 유격대를 조직하여 연합군 상륙작전 시 제2선에서 연결하는 작전이었다. 마침내 1945년 8월 7일 모든 훈련을 마치고 국내진공작전 출정식을 개최했다. 개시일은 8월 10일이었다. 출정식 때 장준하 경기도 공작 반장은 "나는 조국광복을 위해 죽음을 선택했습니다. 내가 나의 죽음을 지불하면, 내 능력껏 그 대가가 조국을 위해서 결제될 것입니다. 나의 각오는 한 장의 정수표입니다. 발생인은 장준하, 결제인은 조국입니다"라는 유서까지 작성했다. / 변상문 국방국악문화진흥회 이사장 2025-09-08 08:00
사진
'포스트 이시바' 누구?...고이즈미·다카이치 선두 [서울=뉴스핌] 오영상 기자 =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가 자민당 총재직 사임을 공식화하면서, 일본 정국의 관심은 차기 자민당 총재 선거로 쏠리고 있다. 집권당 총재가 곧 총리직을 맡는 일본 정치 구조상 이번 총재 선거는 사실상 다음 총리를 뽑는 절차다. 자민당은 조만간 새로운 총재 선거 일정을 확정할 예정이다. 이번 선거에서는 지난 2024년 9월 총재 선거에서 이시바 총리와 경합했던 주요 인사들이 다시 출마할 가능성이 높다. 고이즈미 신지로 농림수산상, 다카이치 사나에 전 경제안보담당상, 하야시 요시마사 관방장관, 모테기 도시미쓰 전 간사장, 고바야시 다카유키 전 경제안보담당상 등이 후보군으로 거론된다. 정국 운영이 소수 여당이라는 제약 속에서 이루어지는 만큼, 차기 총재가 야당과 어떻게 연대할지, 어떤 연립 구도를 짤지가 최대 쟁점으로 꼽힌다. '포스트 이시바' 후보로 꼽히고 있는 고이즈미 신지로 일본 농림수산상 [사진=로이터 뉴스핌] ◆ 고이즈미·다카이치 선두권 현재 여론조사에서는 고이즈미 농림수산상과 다카이치 전 경제안보상이 선두권을 형성하고 있다. 니혼게이자이신문 지난달 29~31일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차기 총리에 적합한 인물로 다카이치가 23%, 고이즈미가 22%를 기록했다. 나란히 1, 2위다. 자민당 지지층으로 한정하면 고이즈미가 32%로, 다카이치(17%)를 크게 앞서는 것으로 나타났다. 다카이치는 2024년 총재 선거에서 1차 투표에서 1위를 차지했으나 결선에서 이시바에게 역전패했다. 고이즈미 역시 의원 표에서 선두에 올랐지만 당원 표에서 밀리며 결선에 오르지 못했다. 두 사람 모두 당내 기반과 대중적 인지도를 겸비해 차기 선거에서도 가장 주목받는 주자들이다. 고이즈미 농림수산상은 1981년생(44세)으로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의 차남이다. 2009년 중의원 첫 당선 이후 줄곧 '포스트 아베', '차세대 리더'로 주목받았다. 환경상, 농림수산상을 거쳤으며 개혁 성향과 젊은 이미지로 지지층을 넓혔다. 2024년 총선에서 당 선거대책위원장을 맡았으나 참패 책임을 지고 물러났다. 이후 농림수산상으로 복귀해 쌀 유통 개혁 등 농정 개혁에 매진했다. 대중적 인지도와 '고이즈미 브랜드'라는 정치 자산이 최대 강점으로 꼽힌다. 다카이치 전 경제안보상은 1961년생(64세)으로 보수 강경파로 분류되는 여성 정치인이다. 2021년 총재 선거에 첫 도전해 아베 신조 전 총리의 전폭적 지원을 받으며 3위를 기록했다. 2024년 총재 선거 1차 투표에서 최다 득표(의원 72표, 당원 109표)를 얻었으나 결선에서 이시바 총리에게 역전 당했다. 유일한 여성 후보로서 '보수의 아이콘' 이미지를 갖고 있으며, 아베 전 총리와 가까웠던 의원 그룹이 주된 지지 기반이다. 이시바 정권에서 당직 제안을 거절하며 독자 노선을 유지해 왔다. '포스트 이시바' 후보로 꼽히는 다카이치 사나에 전 일본 경제안보담당상 [사진=로이터 뉴스핌] ◆ 하야시·모테기 등 잠룡도 주목 고이즈미와 다카이치 두 선두 주자 외에 잠룡들의 행보도 주목된다. 하야시 요시마사 관방장관은 옛 기시다파 일부의 지지를 받고 있으며, 이시바 정권의 2인자로서 존재감을 키워왔다. 모테기 도시미쓰 전 간사장은 당내 경험과 풍부한 인맥을 강점으로 삼고, 아소 다로 전 부총리와 교류를 통해 지지 기반을 다지고 있다. 고바야시 다카유키 전 경제안보담당상은 5선 의원으로, 동기 의원들과 옛 니카이파의 지원을 받으며 출마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다. ◆ 총재 선거 이후에도 정국 '안갯속' 자민당 총재 선거는 국회의원 표와 당원·당우 표를 합산하는 방식이 원칙이지만, 긴급 시에는 국회의원과 지방 지부 대표만 투표하는 '양원 의원 총회' 방식으로 대체될 수 있다. 이 경우 의원 표의 비중이 커져 파벌 역학이 중요해진다. 차기 총재가 선출되더라도 곧바로 정권 안정으로 이어진다는 보장은 없다. 일본 헌법상 총리는 국회에서 지명되는데, 자민·공명 양당은 현재 중의원과 참의원 모두에서 과반을 잃은 상태다. 따라서 야당이 단일 후보를 세워 결집할 경우, 자민당 총재가 총리로 지명되지 못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자민당 총재가 총리에 오르더라도, 예산안·세제 개혁 법안 등 국정 운영은 야당 협조 없이는 불가능하다. 이런 이유로 차기 총재는 곧바로 '연립 확대'나 '정책 연대'를 추진할 수밖에 없고, 총재 선거 과정에서도 어떤 야당과 손을 잡을지가 핵심 화두가 된다. 결국 이번 자민당 총재 선거는 단순히 차기 지도자를 뽑는 절차를 넘어, 일본 정치가 다당제 속에서 어떤 연립 구도를 구축할지 시험대가 되는 분기점으로 평가된다. goldendog@newspim.com 2025-09-08 09:26
기사 번역
결과물 출력을 준비하고 있어요.
기사제목
기사가 번역된 내용입니다.
종목 추적기

S&P 500 기업 중 기사 내용이 영향을 줄 종목 추적

결과물 출력을 준비하고 있어요.

긍정 영향 종목

  • Lockheed Martin Corp. Industrials
    우크라이나 안보 지원 강화 기대감으로 방산 수요 증가 직접적. 미·러 긴장 완화 불확실성 속에서도 방위산업 매출 안정성 강화 예상됨.

부정 영향 종목

  • Caterpillar Inc. Industrials
    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 시 건설 및 중장비 수요 불확실성 직접적. 글로벌 인프라 투자 지연으로 매출 성장 둔화 가능성 있음.
이 내용에 포함된 데이터와 의견은 뉴스핌 AI가 분석한 결과입니다. 정보 제공 목적으로만 작성되었으며, 특정 종목 매매를 권유하지 않습니다. 투자 판단 및 결과에 대한 책임은 투자자 본인에게 있습니다. 주식 투자는 원금 손실 가능성이 있으므로, 투자 전 충분한 조사와 전문가 상담을 권장합니다.
안다쇼핑
Top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