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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환의 예술가 이야기] 방대한 음악극의 창시자, 리하르트 바그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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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에 살고 사랑에 살고(19)

바그너는 기존의 오페라 음악을 보다 새롭고 독특한 형태로 혁신함으로써 음악사에 커다란 족적을 남기게 된다. 우선 그의 오페라 작품들은 규모가 엄청나게 방대하다. 4부작 《니벨룽겐의 반지 (Der Ring des Nibelungen)》는 공연이 장장 나흘에 걸쳐 이루어지는 작품이다. 즉 전야제 〈라인의 황금 (Das Rheingold)〉, 첫날 밤 〈발퀴레 (Die Walküre)〉, 둘째 날 밤 〈지크프리트 (Siegfried)〉, 셋째 날 밤 〈신들의 황혼 (Götterdammerung)〉으로 구성되어 있다.
장르 또한 기존 오페라와는 사뭇 다른 독특한 형태인 ‘음악극(音樂劇)’이란 장르를 새로이 만들어냈다. ‘오페라(opera)’는 음악에 따라 전개되는 연극이며, 언어예술· 시각예술· 음악예술이 이상적으로 혼합된 종합예술이다. 이에 비해 ‘음악극(music drama)’은 대본의 사상적 내용에 초점을 두고 있다. 다시 말해 내용의 극적인 전개를 위해 음악을 활용하는 연극이라고 할 수 있다.
바그너는 음악극을 만들 때 전설의 이야기 중에서 결정적인 중요한 사건만을 취하여 줄거리를 단순화했으며, 인물의 동기부여 과정을 부각시켰다. 그는 이처럼 대본인 시극에 음악을 붙이는 데 뛰어난 능력을 보였는데, 이는 자신이 존경하던 베토벤으로부터 배운 것이었다. 1829년, 그는 베토벤의 유일한 오페라인 《피델리오》를 보고 음악과 연극을 결합한 새로운 양식의 극음악을 만들겠다는 강렬한 열망을 갖게 되었다. 자서전에서 그는 《피델리오》를 본 것을 '내 인생을 통틀어 가장 강한 인상을 준 사건'이라고 회고했다.

바그너의 주요 작품으로는 《방황하는 네덜란드인(Der fliegende Holländer)》, 《탄호이저(Tannhäuser)》, 《로엔그린(Lohengrin)》, 《트리스탄과 이졸데(Tristan und Isolde)》, 그리고 4부작 《니벨룽겐의 반지》 등이 있다. 로엔그린에 삽입된 ‘신부의 합창(The Bridal Chorus)’은 오늘날 결혼식에서 신부입장 때 연주되고 있다. 참고로, 신랑신부가 결혼식을 마치고 행진할 때 연주되는 곡은 멘델스존의 《한여름 밤의 꿈》에 삽입된 ‘결혼행진곡(Wedding March)’이다.
바그너는 음악가로서는 보기 드문 문장가였다. 오페라 작곡가들은 대개 대본작가를 따로 두고 작업을 했는데, 바그너는 자기가 대본을 직접 썼다. 1846년에 작곡을 시작해 2년 만에 완성한 《로엔그린》은 바그너가 중세 기사문학과 서사시, 독일 설화를 바탕으로 쓴 대본에 곡을 붙인 것이다. 음악작품의 대본 이외에도 많은 예술론을 저술하였는데, 주요 저서로 《독일 음악론 (Über Deutsches Musikwesen)》, 《예술과 혁명 (Die Kunst und die Revolution)》, 《미래의 예술작품 (Das Kunstwerk der Zukunft)》, 《오페라와 드라마 (Oper und Drama)》, 《독일예술과 독일정치 (Deutsche Kunst und Deutsche Politik)》 등이 있다.

리하르트 바그너(Wilhelm Richard Wagner, 1813~1883)는 1813년 독일 라이프치히에서 경찰서기인 아버지의 아홉 번째 자식으로 태어났고, 얼마 후 드레스덴으로 이사하였다. 9살부터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한 바그너는 드레스덴 궁정 가극장에서 공연된 베버의 《마탄의 사수》를 보고 큰 감명을 받아 지휘자가 되고 싶다는 꿈을 꾸게 된다. 13세 때에는 셰익스피어와 괴테를 읽고서 문학에도 깊은 관심을 가지게 된다. 이후 1833년부터는 오페라의 악장으로서 여러 도시들을 돌아다니며 경력을 쌓아나갔다.
바그너가 23세가 되던 1836년 11월, 여배우 민나 플라너(Minna Planer)와 결혼을 한다. 결혼한 두 사람은 1842년까지 파리에서 거주하였다. 두 사람은 얼마 동안은 그런대로 괜찮은 관계를 유지했다. 그러나 리스트의 딸이자 한스 폰 뷜로의 아내였던 코지마와 바그너의 애정행각이 본격화되면서 사이가 크게 벌어진다. 한편, 예술의 도시 파리에서의 생활은 바그너에게 예술적 영감을 높이는 계기가 되었다. 수많은 문학가와 예술가들과의 만남이 이루어졌고, 무엇보다도 프란츠 리스트와의 만남은 그의 음악과 인생에 있어 중요한 전환점이 된다.

1842년 바그너는 드레스덴 궁정 가극장의 음악감독이 되어 드레스덴으로 돌아오게 된다. 거기서 《방황하는 네덜란드인》을 자신의 지휘로 초연했고, 그의 대표작이 된 《탄호이저》와 《로엔그린》을 작곡했다. 그러다 유럽혁명의 여파로 1849년 일어난 드레스덴 혁명에 참여하였다는 혐의로 체포령이 내려진다. 이에 바그너는 리스트의 집에 잠시 숨어 있다가 스위스의 취리히로 간다.
1858년까지 이어지는 취리히 망명시절에 바그너는 악극의 이론적 기초인 종합예술론을 담은 《미래의 예술작품》과 《오페라와 드라마》 등의 저작을 저술하였다. 또한 《니벨룽겐의 반지》의 제1부 ‘라인의 황금’과 제2부 ‘발퀴레’ 등도 작곡하기 시작했다. 취리히에 머무는 동안 바그너는 그를 자기 집에 머무르게 하면서 경제적 도움을 주었던 오토 베젠동크의 부인 마틸다와 깊은 관계를 맺게 된다. 이후 바그너는 이 이루어질 수 없었던 사랑을 《베젠동크 가곡집》과 악극 《트리스탄과 이졸데》에 담았다. 바그너는 훗날 코지마와의 사이에서 딸이 태어나자 딸의 이름을 이졸데라고 지었다. 그러나 두 사람의 불륜관계를 잘 알고 있던 바그너의 아내 민나는 《트리스탄과 이졸데》에 대해 가증스런 커플의 이야기라는 비난을 퍼부었다고 한다.

바그너 페스티벌 축제가 개최되는 ‘바이로이트 축제극장’ 전경 <사진=이철환>

1864년 추방이 해제되면서 바그너는 바이에른 국왕 루트비히 2세의 초청을 받고 1864년 뮌헨으로 오게 된다. 같은 해 자신의 열렬한 팬이던 루트비히 2세의 지원으로 바그너는 《탄호이저》를 공연할 수 있게 된다. 그러나 당시 유부녀였던 코지마와의 부도덕한 애정행각이 사람들의 입방아에 오르내렸다. 뮌헨 궁정의 대신들 또한 바그너를 좋지 않게 생각했다. 이런 여론의 압력에 못 이겨 루트비히 왕은 바그너를 떠나보내지 않을 수 없었다. 이듬해인 1865년 결국 바그너는 뮌헨을 떠나 스위스 루체른으로 옮겨간다. 이 루체른에 머무는 동안 바그너는 《트리스탄과 이졸데》와 《뉘른베르크의 명가수들(Die Meistersinger von Nürnberg)》 등을 완성하였다.
1872년부터 바그너는 스위스 지역을 떠나서 독일 바이에른 주 남동부지역의 소도시 바이로이트로 거처를 옮긴다. 거기서 자신의 악극을 상연할 극장 건립을 추진하여 1876년 ‘바이로이트 축제극장’을 완성시켰다. 이 극장 개관기념으로 대규모의 음악극 《니벨룽겐의 반지》 전곡이 초연되었는데 전 유럽의 명사들이 몰려와서 일대 성황을 이루었다. 1882년, 바그너는 바이로이트 축제극장의 두 번째 작품으로 《파르지팔(Parsifal)》을 무대에 올렸다. 하지만 공연 기간 동안 심한 협심증으로 고생을 했다. 축제가 끝난 후 건강을 회복하기 위해 이탈리아 베네치아로 여행을 떠났지만 끝내 회복하지 못했다. 마침내 1883년 2월 13일, 베네치아에서 70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그의 시신은 바이로이트에 있는 하우스 반프리트(Haus Wahnfried)의 정원에 묻혀있다.

바그너는 워낙 자의식이 강하고 독선적인 성격이어서 대인관계가 썩 좋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인종주의자인 바그너는 유대계 음악가들인 마이어 베버와 멘델스존을 매우 싫어해서 사이가 좋지 않았다. 또 동 시대를 살았던 같은 독일계 낭만주의 음악가이던 브람스와도 라이벌 의식이 매우 강해서 그 두 사람의 추종자들까지도 대립하는 모습을 보였다.
‘신은 죽었다’고 외쳤던 염세주의 철학자 니체는 바그너의 루체른 시절 그를 만나게 된다. 당시 31살의 젊은이였던 니체는 열렬한 바그너 숭배자가 되어 그의 저작인 《비극의 탄생》에서 바그너를 찬양한다. 하지만 후일 바그너에 대한 환상이 깨지면서 비판자로 돌아서서 그의 종교적 편견과 반유대주의를 비난하는 《니체 대 바그너》를 발표했다. 이처럼 까칠한 성격인 바그너를 끝까지 이해하고 포용해준 유일한 사람은 그의 두 번째 부인이자 음악활동의 동반자 역할을 해준 코지마였다.

바그너와 코지마와의 애정행각은 당시 사회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다. 코지마는 작곡가 프란츠 리스트의 딸이다. 그녀는 1857년 당대 최고의 피아니스트이자 지휘자였다. 이후 리스트의 애제자인 한스 폰 뷜로(Hans von Bülow)와 결혼했으나 결혼생활은 만족스럽지 못했다. 한스 뷜로와 코지마는 결혼기념 여행 중에 바그너를 방문하게 된다. 이때의 만남이 후일 코지마가 뷜로를 떠나 바그너와 결혼에까지 이르는 단초가 된다. 바그너는 코지마와 오랜 동거생활을 해오다 전처인 민나가 죽자 1870년 결혼식을 올렸다. 그리고 이 결혼으로 인해 리스트는 친구 사이인 바그너와 절교하게 된다.
리스트는 이 결혼을 여러 모로 못마땅하게 여겼다. 자신의 딸인 코지마는 바그너보다 24살이나 어렸고, 사위가 된 바그너는 자신보다 불과 두 살 아래인 친구이자 동료였다. 거기다 전 사위인 한스 폰 뷜로는 자신뿐만 아니라 바그너 또한 아끼던 제자였기 때문이다. 더욱이 바그너에게 있어 한스 뵐로는 그의 작품들을 성공적으로 연주하여 빛을 보게 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사람이었다. 이 둘의 결합을 못마땅해 한 것은 비단 리스트뿐만이 아니었다. 당시 여론도 이들을 격렬히 비난했고, 결국 루트비히 왕의 곁을 떠날 수밖에 없는 결정적 사유가 되었다.
우여곡절을 거친 결혼이지만 당사자들은 매우 행복했다. 특히 코지마는 열정적으로 바그너의 음악활동을 내조했다. 1883년 바그너가 죽자 코지마는 바이로이트 축제를 맡아 1908년 아들이 이어받을 때까지 계속 예술감독으로 일했다. 그녀는 바그너보다 47년을 더 오래 살면서 바이로이트 축제극장의 여주인으로 남편의 작품을 후세에 길이 남기는 데 힘썼다. 나중에 시력을 완전히 잃고 바이로이트에서 죽었다.

바그너의 이념적 성향은 오늘날에도 논란이 되고 있다. 바그너는 게르만민족 우월주의자이자 반 유대주의자였다. 그는 같은 시대를 살았던 유대인 음악가인 마이어 베버와 멘델스존을 싫어했다. 또한 그의 음악극들이 대부분 게르만의 신화와 전설을 소재로 하고 있는 데서도 잘 나타나고 있듯이 그는 철저한 독일민족주의 사상의 신봉자였다.
이러한 바그너의 성향과 작품들을 나치정권과 히틀러는 잘 활용하였다. 히틀러는 바그너를 매우 좋아했는데, 바그너의 오페라 《트리스탄과 이졸데》를 40회 이상 관람했다고 한다. 히틀러는 자신이 바그너의 음악에 열광하는 이유를 “인간의 감정을 뒤흔들고 독일인의 위대함을 드러내며, 누구나 공감할 수 있고 민족의 결속력을 다질 수 있는 음악이 바그너의 음악이기 때문이다.”라고 밝힌 바 있다.

히틀러는 바그너의 음악을 나치 집회는 물론 유대인 학살 수용소에서도 틀었다. 따라서 유대인과 이스라엘 입장에서는 바그너 음악은 악몽 그 자체이다. 이스라엘에서는 아직도 바그너 음악의 공연이 터부시되고 있는 실정이다. 그런데 유대계 지휘자인 바렌보임은 2001년 이스라엘 국립음악축제에서 바그너의 대표작 《트리스탄과 이졸데》 서곡을 연주하였다. 그러자 이스라엘 사람들은 바렌보임이 홀로코스트의 숭고한 정신을 모독했다고 맹렬히 비난했다.

이철환 객원 편집위원 mofelee@hanmail.net (전 재정경제부 금융정보분석원장, 전 한국거래소 시장감시위원장. 문화와 경제의 행복한 만남 등 다수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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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크라이나 안보 지원 강화 기대감으로 방산 수요 증가 직접적. 미·러 긴장 완화 불확실성 속에서도 방위산업 매출 안정성 강화 예상됨.

부정 영향 종목

  • Caterpillar Inc. Industrials
    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 시 건설 및 중장비 수요 불확실성 직접적. 글로벌 인프라 투자 지연으로 매출 성장 둔화 가능성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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